
동대구역 광장에 지난달 23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본뜬 ‘A동상’이 설치돼 있다. 백경열 기자
대구시가 ‘박정희 동상’의 추가 설치를 보류한 것으로 확인됐다. 동대구역 동상 설치 강행 과정에서 불거진 부정적 여론을 의식한 움직임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14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대구시는 남구 대명동 대구대표도서관 앞에 세울 예정이던 박정희 동상의 제작을 두고 재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시는 이달 초쯤 동상 설치를 맡은 작가에게 해당 사실을 알리고 제작 공정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도서관의 여건 등 여러 사항을 고려해 박정희 동상의 추가 설치 문제를 ‘보류’하게 된 것이 맞다”면서 “도서관 준공 예상 시점인 올해 말까지 내부적으로 동상 설치 여부를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지시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지난달 동대구역 동상 제막을 강행했던 홍 시장은 최근 추가 동상 건립을 두고 회의적인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따라 실무진이 추가 동상건립 작업을 일단 보류한 것이다.
다만 대구시 측은 추가 동상을 재검토하게 된 배경을 두고, 지역 사회의 반발 때문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시 관계자는 “(동상 재검토는)비상계엄 이후 탄핵 정국이 계속되는 어수선한 분위기 등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앞서 대구시는 지난달 21일 동대구역 광장에 박 전 대통령 ‘A동상’을 세우고, 이틀 뒤 제막식을 열어 모습을 공개했다. 이 동상은 높이 3m로, 예산 약 6억원이 투입됐다. 지역 사회에서는 “시대 정신의 퇴행”이라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대구시가 지난해 6월 게시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설치 작가 모집 공고문. 대구시 홈페이지 갈무리
대구시는 당초 동대구역 광장의 A동상 이외에 공사 중인 대구대표도서관 앞에도 사업비 7억원을 들여 높이 6m, 기단 2m의 ‘B동상’을 건립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시는 지난해 6월 전국 단위로 설치 작가 공모를 벌여, 그 해 9~10월 각각 당선작을 뽑았다.
공모전에서는 동상 모형 심사도 이뤄졌다. 즉 현재 동상 건립을 맡을 작가와 동상 디자인 등이 결정된 상태다.
대구시 측은 “(공모 당시)모형 제작비 이외에 아직까지 동상 제작을 위해 작가가 추가로 소요한 경비는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만약 동상 제작이 취소되더라도 (초기 단계인 만큼)위약금은 물지 않겠지만, 계약 위반에 따른 보상금 등은 지급해야 할 것으로 본다. 필요 시 법률 자문을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재검토 끝에 박정희 동상 건립이 무산될 경우, 예산으로 편성된 사업비 7억원은 불용 처리된다. 시는 지난해 추경을 통해 박정희 동상 주변 폐쇄회로(CC)TV 설치와 작가 공모 등 사업비 14억5000만원을 책정한 바 있다.

대구 시민단체 등이 연대한 ‘박정희우상화반대 범시민운동본부’ 관계자 등이 지난달 23일 박정희 동상 제막식이 진행되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백경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