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기 계약’에 목숨 끊은 경비노동자 딸 “책임지는 어른이 없다”

김지환 기자
창원컨벤션센터 경비노동자 고 김호동씨 딸이 지난 7일 창원시 성산구 경남관광재단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김씨 유족 제공

창원컨벤션센터 경비노동자 고 김호동씨 딸이 지난 7일 창원시 성산구 경남관광재단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김씨 유족 제공

“저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해고를 하나.” (경비노동자 김호동씨)

“해고가 아니라 고용승계를 하지 않는 거다.” (용역업체 SWM 부장 A씨)

“저에겐 해고와 마찬가지다.” (김씨)

“조건을 제시하겠다. 3개월 근로계약서를 쓰고 하는 거에 따라 연장 여부를 논의하겠다.” (A씨)

“3개월 근로계약은 거부하겠다.” (김씨)

“직원 67명 전부 다 3개월짜리 계약서 쓴다.” (A씨)

“그러면 쓰겠다.” (김씨)

“3개월 뒤 아니다 싶어 계약연장 안 하면 억울하다 말할 건가.” (A씨)

“안 하겠다.” (김씨)

“관리하는 부장에게 죽니 마니 이런 이야길 하는 건 아니죠.” (A씨)

“죄송하다.” (김씨)

“경남도 주무관이 전화 와서 자기가 책임질 테니 (김씨) 3개월 일하게 해달라 해서 생각을 달리했다. 다시 한번 기회를 드리는 거다. 둥글둥글하게 살자.” (A씨)

경상남도와 창원시가 설립한 창원컨벤션센터(CECO·세코)에서 일하던 경비노동자 김씨가 지난달 31일 세코 시설관리 용역업체로 새롭게 선정된 SWM 부장 A씨와 전화로 나눈 대화다.

우여곡절 끝에 실직을 면한 김씨는 지난 1일 새벽, 방학이라 창원에 있던 대학생 딸 방에 들어가 “걱정을 끼쳐 미안하다. 잘 됐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말한 뒤 새해 첫 출근을 했다. 김씨는 이날 오전 10시쯤 딸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 믿어줬으면 좋겠다”며 울먹였다. 딸은 이 통화가 아버지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듣는 순간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김씨는 밤 10시쯤 세코 하역주차장 인근에서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에는 ‘3개월짜리 시한부 고용승계에 무력감을 느낀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창원컨벤션센터 경비노동자 고 김호동씨 딸이 지난 9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발언하고 있다. 정의당 경남도당 제공

창원컨벤션센터 경비노동자 고 김호동씨 딸이 지난 9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발언하고 있다. 정의당 경남도당 제공

2018년 9월부터 세코 경비 용역업체에서 일해온 김씨는 2021년부터 3개월 혹은 6개월 단위 쪼개기 계약을 강요받았다. 지난해 세코 운영을 경상남도가 출자한 경남관광재단이 맡게 되면서 공공부문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이 적용돼 용역업체와 1년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보호지침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을 승계하고 용역계약 기간 중 고용을 유지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경남관광재단과 올해 1년간 계약을 맺은 새 용역업체 SWM은 보호지침을 따라야 한다는 입찰공고문에 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부 노동자의 고용승계를 거부했다가 마찰이 빚어지자 우선 3개월 근로계약을 맺기로 한 것이다.

유족은 김씨 사망 이후 세코, 경남관광재단 등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9일에는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재 인정, 공개 사과, 용역노동자 고용안정 대책 마련 등을 경상남도·경남관광재단·용역업체에 요구했다.

김씨 딸은 14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아버지 죽음에 책임지는 어른이 한명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재단은 고용승계와 1년 단위 근로계약이 되도록 관리감독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용역업체는 그간 3개월 단위로 근로계약을 해온 회사 방식대로 한 것이라고 해명할 뿐”이라고 했다.

유족 대리인인 김기홍 노무법인 돌꽃 노무사는 “용역업체에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재단의 책임이 더 크다”며 “공공기관인 경남관광재단은 용역업체 노동자 직접고용 등 고용안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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