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주차장에 쿠팡 배송 차량이 주차돼 있다. 권도현 기자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가 택배영업점 배송기사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했다는 정황에 관해 근로감독을 벌여온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 배송기사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야당과 노동계는 노동부가 배송기사의 노동자성을 기계적으로 판단해 쿠팡CLS에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했다.
노동부는 쿠팡CLS 본사와 서브허브(1차 물류거점), 캠프(2차 물류거점), 외부 택배 물류센터 등에 대해 진행한 ‘쿠팡CLS 근로감독 결과’를 14일 발표했다. 감독은 산업안전보건, 기초노동질서, 배송기사 불법파견 등 세 가지 분야에서 이뤄졌다.
산업안전보건 감독은 서브허브와 캠프 등 82개소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감독 대상 절반인 41개소에서 91건의 법 위반이 적발됐다. 산재 지연 보고, 안전교육 미실시, 야간작업자 특수건강진단 미실시 등이다. 노동부는 4건을 사법처리하고 53건에 총 9200만원의 과태료를, 34건에 시정조치를 내렸다.
기초노동질서 분야는 ‘가짜 3.3’ 계약(노동자와 근로계약을 맺는 대신 개인사업자로 위장 계약해 사업주의 의무를 피하는 것), 사회보험 미가입 등을 조사했다. 위탁업체 8개소와 캠프, 외부 택배 물류센터 등 42개소를 감독한 결과 위탁업체 3곳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위탁업체 4개소와 물류센터 2개소에서는 일용직 360명을 개인사업자로 위장시켜 계약한 사실이 적발됐다. 임금체불 등 136건의 근로기준법 위반도 적발됐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9월9일 국회 앞에서 계속되는 쿠팡 노동자 사망과 관련하여 국회에서 쿠팡 청문회를 개최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본사와 외부 택배 위탁업체 등 46곳을 대상으로 이뤄진 불법파견 감독은 지난 5월 숨진 배송기사 정슬기씨(41)가 쿠팡CLS로부터 빠른 배송을 종용받은 뒤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고 답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뤄졌다. 정씨 외에도 여러 배송기사들이 쿠팡CLS로부터 ‘신선식품을 우선 배송하라’는 등 지시를 받으며 일해온 것이 경향신문 취재 결과 드러났다.
불법파견이 성립하려면 형식상 개인사업자인 배송기사가 근로기준법상 영업점 노동자라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이 장벽을 넘어서야 원청인 쿠팡CLS가 하청노동자에게 업무지시를 했다는 점을 근거로 파견 관계인지를 판단한다.
노동부는 83회 현장조사, 137명 대면조사, 기사 1245명 카카오톡 등 분석을 거친 결과 “배송기사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하기 어렵고, 그 결과 근로자파견 관계도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다. 노동부는 기사들이 배송업무에 필요한 화물차량을 소유하고 직접 관리하고, 업무시간을 본인 재량으로 선택할 수 있다며 이같이 판단했다. 고정된 기본급이 없고 배송 건당 수수료를 지급받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노동부는 쿠팡CLS가 배송기사들에게 업무 관련 연락을 한 것도 “주로 오배송·파손 시 처리 절차 안내, 물량 안내 등 배송 과정에서 퀵플렉서(배송기사)의 문의에 대한 안내나 정보 제공 용도”라고 설명했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는 “노동부가 확인했다는 사실관계는 쿠팡 노동현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책위는 입차 시간 조정이 매우 제한적이며 신선식품을 먼저 배송하라는 지시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고 짚었다.
노동부 과로예방 대책이 주 5일 근무, 야간 배송 방식·업무량 조정, 배송거점 추가 확보 등을 쿠팡CLS에 요구하는 데 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책위는 “최소한 과로사 산재 기준인 주 60시간을 준용해 최소한의 노동시간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했다”고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성명에서 “미흡한 수준을 넘어 사실상 쿠팡 측의 불법경영에 면죄부를 주는 근로감독”이라며 “어디에도 배송기사들의 야간노동 시간과 강도를 조사했다는 내용이 없고 개선책도 하나마나한 권고 수준”이라고 했다. 환노위는 오는 21일 쿠팡 심야노동과 산재를 주제로 청문회를 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