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을 앞둔 1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나무 사이로 대통령 휘장이 보인다. 성동훈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칩거해온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는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뜻에서 ‘한남산성’이라고 불렸다. 외곽에서 군·경이, 관저 경내에서도 무장한 대통령경호처 직원들이 지켰다. 하지만 한남산성은 적법하게 발부된 체포영장과 압도적인 경찰력에 끝까지 저항하지 못하고 마침내 15일 백기를 들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 수사관들은 이날 오전 4시 28분쯤 대통령 관저 앞에 도착했다. 4시 39분에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관저로 들어서는 정문 앞에서 인간띠를 형성해 대치가 벌어졌다. 체포·수색영장을 제시하며 집행이 시작된 건 오전 5시 10분쯤이다.
이때부터 수사관들은 관저 진입을 시도하며 국민의힘 의원 및 윤 대통령의 변호인단과 대치했다. 해산을 위한 경고 방송을 한 뒤 오전 7시34분 1차 저지선이었던 차벽을 사다리로 넘어 통과했다. 10여분 뒤에는 차벽을 우회해 2차 저지선을 통과했고 오전 7시 57분 3차 저지선에 도착했다. 영장 제시부터 3차 저지선까지 2시간 가량 걸린 셈이다.
이후 오전 8시 24분 관저의 철문이 개방됐고, 이후 공수처에서 윤 대통령 변호인단과 체포영장 집행에 대해 논의했다. 결국 오전 10시 33분 체포영장이 집행됐다. 집행 개시 5시간여 만이다.
1차 집행보다 10배 많은 수사관 투입…경찰 주도 작전 주효
1차, 2차 집행의 가장 큰 차이는 투입된 경찰 수사관의 규모다. 1차 집행 때는 공수처 수사관 30명과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소속 수사관 50명 등 총 80명이 관저 경내에 진입했다. 경찰 수사관은 총 120명 동원됐는데 일부만 내부에 투입된 것이다. 이들은 경호처가 구축한 1차, 2차 저지선을 통과했지만 3차 저지선에서 경호처 직원 200여명에게 가로막혀 물러났다. 공수처 관계자는 1차 집행 무산 뒤 “관저 200m 이내까지 접근했는데 경호처 직원 등 200여명이 겹겹이 벽을 쌓고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며 “저희 집행 인원보다 경호처 인원이 훨씬 많았다”고 말했다.
공수처와 경찰은 2차 집행 앞두고 ‘인해전술’을 준비했다. 압도적인 인원으로 경호처의 수성 의지를 꺾으려는 의도에서다. 1차 집행 무산 뒤 체포영장 집행을 사실상 주도하게 된 경찰은 수도권 광역·안보 수사부서를 총동원했다. 2차 체포영장 집행에는 경찰 수사관 총 1100여명이 투입됐다. 1차에 비해 10배 규모다. 관저 인근에 배치한 기동대도 1차 때 2700명보다 많은 3200명이 투입됐다.
경찰은 많은 인원을 동원했을뿐 아니라 경호처가 구축한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한 수단도 강구했다. 1차 집행 때는 없었던 사다리와 절단기를 준비했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경호처는 버스로 진입로를 막았지만 경찰 수사관들은 미리 준비해온 사다리를 이용해 타고 넘어갈 수 있었다. 출입문을 막은 철조망과 쇠사슬 등은 절단기로 끊어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1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경호처 분열로 무너진 ‘한남산성’…“물리적 충돌 없어”
경호처의 분열도 큰 충돌 없이 2차 집행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였다. 1차 집행 당시 경호처 관계자들은 관저 앞에서 스크럼을 짜고 가로막았고, 수사관들과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2차 집행 때 경호처 직원들이 더 격렬히 저항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경호처는 2차 집행이 임박하자 무장한 직원들의 모습을 언론에 노출시키기도 했다. 유혈 사태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
그런데 실제 집행에 들어서자 경호처 직원들과의 물리적 충돌은 사실상 벌어지지 않았다. 경호처 직원들은 적극적으로 막아서지 않고 체포영장 집행에 사실상 협조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날 “1차 때와 다르게 2차 집행에서는 적극적으로 막는 경호처 직원들이 없었다”며 “물리적 충돌도 오늘은 사실상 없었다”고 말했다.
경호처의 태도 변화는 강경파 지휘부가 사실상 무력화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종준 전 경호처장이 1차 집행 이후 경찰에 자진하면서 자리에서 물러났고, 강경파로 꼽힌 김성훈 경호처 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 등이 지휘권을 물려받았지만 경찰은 이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법원에서 발부받으며 압박했다.
경호처 내부에서도 합법적인 영장 집행에 따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체포영장 집행에 앞서 “협조하는 경호처 직원은 선처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2차 집행 과정에서 경찰이 문을 부수거나, 삼단봉 등 저항하는 상대방 제압하기 위한 장구가 쓰이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공수처 출석에 응하겠다”고 했지만 경호처가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는 것으로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