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석곤 소방청장이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비상계엄 당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 지시와 관련한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이상민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이 허석곤 소방청장에게 내린 ‘경향신문 등 특정 언론사들에 대한 단전·단수’ 지시가 소방청 내부에도 하달된 것으로 드러났다. 허 청장이 “재난에 준하게 판단했다”고 밝히자 “언론사 단전·단수가 재난인가”라는 비판이 나왔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5일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국조특위)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영팔 소방청 차장은 계엄 선포 1시간여 뒤인 지난달 3일 오후 11시40분쯤 황기석 서울소방재난본부장에게 전화해 “계엄포고령과 관련해 경찰청에서 협조해 달라고 요청이 오면 잘 협력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황 본부장은 “알겠고, 알아서 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 차장은 “서울본부에서 협력할 사항이 제일 많이 발생할 수 있다”고도 했다.
10분 뒤인 지난달 3일 오후 11시50분쯤에는 허 청장이 황 본부장에게 전화해 경찰로부터 협조 요청받은 사항이 있는지 물었다. 황 본부장이 “협조 요청을 받은 사항이 없다”고 답하자, 허 청장은 “서울에서 상황이 많을 수 있으니 발생 상황을 잘 챙겨주길 바란다” 등의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앞서 허 청장은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질의에서 계엄이 선포된 지난달 3일 소방청장 주재 회의 때 이 장관으로부터 경향신문과 한겨레, MBC, JTBC 등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에 협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허 청장은 ‘어떻게 조치했는지’ 묻는 윤 의원 질문에 “우리가 할 수 없는 부분이라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장 등 다른 간부에게 관련 지시를 이첩한 적 있냐’는 질의에는 “지시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허 청장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도 이 전 장관과 지난달 3일 오후 11시37분쯤 60여초 동안 통화한 사실은 있지만, 그 내용은 ‘소방 관련 특이사항 있는지 문의→특이사항 없었음’이라고 보고했다. 소방청 차장과 청장에게 연이어 연락을 받았다는 소방본부장 증언과 배치된다.
허 청장은 이날 ‘국회에 허위 자료를 내고 위증한 것이냐’는 윤 의원 지적에 “당시에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실정이었다”라며 “재난에 준하게 저희들이 판단을 했다. 어떤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에 윤 의원은 “언론사 불 끄고 물 끊는 게 재난 상황인가”라며 “국민을 배신하고 내란에 동조나 하고, 소방 제복을 입을 자격이 있나”라고 비판했다.
이 차장도 “그때 워낙 경황이 없어 (전화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며 “(협조 요청 지시는) 재난 대응 차원에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차장은 ‘청장의 지시를 받아 차장이 구체적으로 지시한 것으로 보이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라는 윤 의원 질문에 “그런 적 없다”고 답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 장관이 특정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를 지시한 사실을 알고 있었나’ 묻는 백혜련 민주당 의원 질문에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은 “언론사 단전·단수와 관련한 지시를 이 전 장관과 대통령 중 누구에게 받았나”라는 윤 의원 질문에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대국민 담화에서 “국회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다면 국회 건물에 대한 단전·단수 조치부터 취했을 것이고, 방송 송출도 제한했을 것”이라며 “그러나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