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은 흥미진진 미래는 암중모색…프로농구 판 흔드는 아시아쿼터 필리핀 선수들

이두리 기자

경쟁 뒤처지는 국내 선수…장기적 경쟁력 저하 우려

프로농구 아시아쿼터 선수들이 판을 흔들고 있다. 경기의 역동성은 높아졌으나 장기적인 국제 경쟁력 측면에서는 위험 신호다. 아시아쿼터 제도가 국내 선수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메기 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까.

아시아쿼터 제도가 KBL에 도입되고 6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일본 선수만을 대상으로 했으나 2022년 필리핀 선수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샘조세프 벨란겔(26·대구 한국가스공사)이 2022년 ‘1호 필리핀 아시아쿼터’ 선수로 가스공사에 입단한 이후 각 구단은 속속 필리핀 선수를 영입했다. 현재 KBL리그에 등록된 아시아쿼터 선수들은 모두 필리핀 국적이다. 대부분 가드지만 칼 타마요(24·창원 LG)처럼 높은 신장(202㎝)을 활용해 골 밑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선수도 있다.

화려한 기술과 스피드를 자랑하는 아시아쿼터 선수들은 빠르게 한국 프로농구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2023년에는 당시 울산 현대모비스 소속이었던 론 제이 아바리엔토스가 신인상을 받았고 2024년에는 이선 알바노(29·원주DB)가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다. 칼 타마요는 이번 시즌 3라운드 MVP로 선정됐다. 전부 아시아쿼터 선수 최초의 기록이다.

최근 아시아쿼터 선수들은 1옵션 외국인 선수 못지않은 득점력을 뽐내고 있다. 가스공사의 에이스로 거듭난 벨란겔이 36득점으로 아시아쿼터 최다 득점 기록을 작성하자마자 타마요가 37득점을 폭발시키며 기록을 갈아치웠다. 현재 평균 득점 상위 20명 중 아시아쿼터 선수는 이선 알바노·칼 타마요·샘조세프 벨란겔 3명이다. 국내 선수는 6명뿐이다. 나머지는 외국인 선수들이 채우고 있다. 아시아쿼터 선수들이 전방위에서 활약할수록 국내 선수들의 입지는 좁아진다. 아시아쿼터 제도가 리그의 역동성을 높이며 ‘보는 맛’을 더하긴 했으나 한국 농구의 경쟁력 제고에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를 ‘자극’으로 삼아 경쟁을 통한 성장의 기회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프로농구 지도자들도 고민이 깊다. 송영진 수원 KT 감독은 “국내 선수들이 아시아쿼터 선수들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다”며 “한국 농구 저변이 약해서 그런지 국내 신인 선수들 중에는 즉시전력감으로 쓸 선수들이 안 보이는 상태”라고 말했다. 조상현 LG 감독은 “국내 선수들이 경각심을 갖고 경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규섭 해설위원도 한국 엘리트 농구의 한계를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학교에서 대학 입시에 맞춘 농구를 하고 있어서 선수들의 성장이 저해되는 부분이 있다”며 “득점에만 초점을 맞춘 농구를 해오다 보니 프로에 와서도 자신의 경쟁력을 갖고 묵묵하게 돌파하는 선수가 드물다”고 말했다. 다만 이 위원은 “필리핀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를 추려 영입하니까 그만큼 더 돋보이는 것”이라며 “국내 선수들이 경쟁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필리핀 선수들이 원래는 공격에 특화돼 있었는데 한국에 와서 수비력까지 갖추면서 경기력이 더 좋아졌다”며 “출전 기회를 많이 받으면서 실력이 늘고 주전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국내 선수들도 출전 시간을 충분히 보장받는다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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