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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의 두 얼굴

요즘 부쩍 ‘파시즘’이란 말이 유럽과 미국에서, 또 부분적으로 한국에서도 자주 들린다. 사실 파시즘은 역사학의 난제 중 하나인데 이 문제를 푼다고 노벨상이나 필즈상이 주어질 리 없건만, 그간 수많은 연구자가 파시즘 연구에 매달리며 그 정체를 밝히려 갑론을박을 벌여왔다. 여전히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고 해법도 오리무중이지만, 파시즘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된 공식들은 있다. 가령 파시즘은 폭력을 정치의 수단으로 삼은 이념이자 운동이라는 것이다. 파시즘의 원조라 할 이탈리아 파시즘의 경우 파시스트들은 각종 소형 화기와 곤봉, 그리고 구토와 설사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정화’의 수단으로 간주된 피마자기름 등으로 무장하고 트럭으로 무리지어 다니며 정적과 비판자들에게 무차별 테러를 가했다.

이처럼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이 검은 셔츠를 입고 팔을 치켜들며 로마식 경례를 하면서 폭력을 통해 대중을 선동하는 모습은 당대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리하여 파시즘은 삽시간에 유럽 전역에 퍼져 아류들을 낳았는데, 독일의 갈색 셔츠를 입은 나치 당원들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곧 파시스트와 나치는 당대 유럽에서 폭력의 아이콘이 되었고, 이탈리아와 독일은 역사상 가장 폭력적인 억압과 공포의 체제가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웃지 못할 장면은 억압과 공포의 집행자가 법과 질서의 수호자를 자처한 대목이다. 특히 권력을 장악한 후 파시즘은 법과 질서를 앵무새처럼 되뇌며 그 성과를 과장하여 선전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파시즘이 기차를 정시에 도착하게 만들었고, 여성과 아이도 밤길을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했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러나 파시즘은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운 만큼이나 어지럽힌 세력이었다. 파시즘은 법과 힘, 질서와 폭력 등 상반되는 것들을 동시에 말하고 행했다. 이는 명백히 모순이다. 한편으로 법 앞에 주먹을 앞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법의 지배를 내세웠으니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파시스트들의 폭력으로 초래된 혼란을 수습할 사람은 파시즘의 수장인 무솔리니밖에 없겠다고 생각하여 왕이 그를 총리로 지명한 사실은 어처구니없다. 이처럼 파시즘은 힘과 법, 폭력과 질서라는 서로 대립하는 원리들을 장착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파시즘엔 두 개 얼굴이 있다고들 한다. 짐작할 수 있듯, 하나는 적을 제거하기 위해 스스럼없이 힘과 폭력을 행사하며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의 이름으로 법을 부과하여 국가 권위와 사회 질서를 확립하려는 얼굴이다. 여기엔 역설이 숨어 있다. 파시스트들은 위계와 규율이 잘 잡힌 이상적 질서를 추구했는데, 그런 미래의 질서를 가져오기 위해선 먼저 무질서하게 보이는 현재 상태를 깨부숴야 했다. 그들이 ‘혁명’을 외치며 폭력을 불사한 까닭이다. 법과 질서에 대한 강박증이 힘과 폭력을 통해서라도 법과 질서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분열증을 낳은 셈이다. 파시즘이 드러낸 자기모순적 민낯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그런 자기모순은 파시즘이 저렴한 마키아벨리주의임을 암시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무솔리니는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의 애독자였다. 그러나 제자는 스승을 열심히 읽었지만 잘못 읽었다. 흔히 오해하듯이, 마키아벨리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그의 진짜 가르침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적의 수단과 방법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장의 편법으로 득을 볼 수도 있겠지만, 길게 보면 해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어쩌면 편법은 목적을 달성하는 최적의 수단은커녕 최악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무솔리니는 법과 질서라는 목적을 이룰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에 개의치 말고 힘과 폭력을 사용해도 좋다는 식으로 마키아벨리의 교훈을 곡해했다. 그런 잘못된 해석은 꽤 뿌리가 깊은데,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통용되며 불행을 낳는 것 같아 씁쓸하다.

장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장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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