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증 소년의 시선 속 중국의 비극

최민지 기자
[책과 삶] 조로증 소년의 시선 속 중국의 비극

세 중국인의 삶
다이 시지에 지음 | 이충민 옮김
문학동네 | 160쪽 | 1만6000원

중국의 섬 귀도에 사는 열두 살 소년은 일흔 살 노인처럼 보인다. 머리카락은 거의 남지 않았고, 얼굴에는 세상의 모든 주름이 모여 있는 듯하다. 이 섬에 퍼져버린 조로증을 소년 역시 피하지 못했다.

흉측한 모습 때문에 학교에선 쫓겨난 그는 대부분 시간을 ‘벙어리 두부 장수’인 친척 아주머니와 보낸다. 불러주는 사람이 없은 지 오래라 이제 소년은 자기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어느 날 소년의 집에 낯선 손님이 찾아온다. 교도소 소장이라는 남자는 돈가방을 내밀며 여인에게 조카를 사겠다고 한다. 이 섬의 조로증 환자 가운데 머리가 알뿌리처럼 부풀지 않은 건 이 아이뿐이란다.

여인은 돈을 받는다. 소년은 신이 났다. 멋진 서커스단에 들어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남자가 소년을 데려간 곳은 서커스가 아니라 수감 시설이다. 남자는 소년에게 ‘호찌민’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세 중국인의 삶>이라는 직관적 제목의 소설집 첫 번째 이야기 ‘호찌민’이다. 소년을 산 사람들 뒤에는 중국 공산당의 부패와 사회의 인간성 상실이 자리하고 있다. 유쾌하고도 순수한 소년의 시선에서 펼쳐지는 비극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떠올리게 한다.

프랑스 문학상 페미나상 수상작가 다이 시지에의 첫 소설집이다. 중국 출신 프랑스 작가로, 문화대혁명 여파로 고초를 겪은 뒤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하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로 데뷔한 이후 타국의 언어로 모국의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해왔다. 처연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비극적 사회상을 그려내는 것은 그의 특기다.

세 편의 단편으로 이뤄진 소설집은 전국의 쓰레기가 모이는 섬 귀도를 배경으로 세 명의 중국인의 삶을 조명한다.

‘저수지의 보가트’는 얼어붙은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소녀를, ‘산을 뚫는 갑옷’은 미대에서 그림을 그리는 청년을 등장시킨다. 이렇다 할 공통점 없는 세 사람의 운명은 국가폭력 안에서 놀랍도록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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