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내야수’ SSG 정준재
‘동호회 출신’ 고양소노 정성조

정준재
드래프트 재수 끝 5라운더
콘택트·빠른 발 강점으로
올 시즌 ‘주전 2루수’ 경쟁
“지찬이 형 보고 많이 배워”
정준재(22·SSG)는 키 165㎝의 단신 내야수다. 2024시즌 프로야구 선수들의 평균 신장(182.2㎝)보다 15㎝ 이상 작다. 키가 크다고 야구를 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작은 키’는 그의 야구 인생에서 약점에 가까웠다. 정준재는 전화 인터뷰에서 “고등학교 때 딱 2㎝ 더 크고 끝났다”며 “크고 싶다고 클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이걸 어쩌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돌아봤다.
정준재는 강릉고 시절 ‘빠릿빠릿한 선수’로 프로 스카우트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시기인 3학년 때 타율이 0.211(23경기)에 그쳤다. 한 프로구단 스카우트 담당자는 “야구는 잘하는데, 키가 작고 힘이 부족했다”고 고교생 정준재를 기억했다. 첫 신인 드래프트에서 낙방한 정준재는 대학에서 프로의 꿈을 이어갔다.
그는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키에 대한 미련을 대학에서 털어냈다. 대신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했다. 그는 “키가 작아도 프로에서 성공한 선수들이 많다. 장점을 더 극대화해서 키가 큰 선수들보다 잘하려고 노력했다”며 “생각을 바꾸니까 자신감도 더 붙었다”고 말했다.
정준재는 대학교 2학년 때 20경기 출전에 타율 0.415, OPS 1.168을 기록하며 대학리그에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얼리 드래프트’로 프로의 문을 두드렸고, 2024 KBO 신인 드래프트 5라운드(50순위)로 SSG 유니폼을 입었다. 그는 “가장 야구가 잘된 해였다”며 “하위 라운드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높은 순번에 호명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정준재는 SSG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콘택트와 빠른 발의 강점을 살려 프로 첫해 88경기(57선발)에 나서 타율 0.307, 16도루, OPS 0.776의 성적을 거뒀다. 수비에서도 준수한 모습을 보였고, 올해는 미국 플로리다주 비로비치에서 열리는 1군 스프링캠프에서 ‘주전 2루수’ 경쟁에 나선다.
정준재는 지난 시즌 중 삼성 외야수 김지찬(24)의 타격 영상을 자주 찾아 봤다. 김지찬은 정준재보다 2㎝ 작은 KBO리그 최단신 선수로, 지난해 135경기에 나서 타율 0.316, 42도루, OPS 0.789를 기록했다.
그는 “작은 체구에도 빠른 공이든 변화구든 다 대처한다. 어떻게 콘택트하고, 강한 타구를 날릴 수 있는지 참고했다”며 “키에 맞는 스윙을 하는 (김)지찬이 형을 보고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정준재는 23일 미국으로 스프링캠프를 떠나 2025시즌을 준비한다. 비시즌 기간에는 기술·근력 운동뿐 아니라 필라테스도 하며 유연성을 보강했다. 그는 “부상 없이 최대한 많은 경기에 나가 올해도 3할을 유지하고 싶다”며 “도루도 많이 하고 싶다. 50개 이상을 목표로 열심히 뛰어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정성조
모비스전 위기 속 출전해
17분48초간 16득점 ‘폭발’
클러치 상황서도 겁 없어
“습득력 좋은 선수” 평가
비선출이 일을 냈다. 정성조(25·고양 소노)의 활약상은 팀을 넘어 리그 전체에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소노는 지난 15일 리그 2위의 강팀인 울산 현대모비스와의 경기에서 84-81로 이기며 5연패 수렁에서 빠져나왔다. 힘든 승부였다. 근소하게 리드를 유지하던 소노는 4쿼터에 1점 차이로 따라잡혔다. 절체절명의 순간 해결사로 나선 선수는 다름 아닌 3라운더 신인 정성조였다.
정성조는 작전타임 직후 이재도의 어시스트를 받아 3점 슛을 터트린 데 이어 스틸 속공까지 성공했다. 정성조가 4쿼터에 만들어낸 5점이 소노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성조는 이날 17분48초 동안 16득점을 폭발시키며 커리어 하이를 작성했다. 짧은 출전 시간에도 불구하고 주전급 활약을 펼쳤다. 경기 후 김태술 소노 감독은 정성조에 대해 “픽 앤드 롤 훈련을 할 때 반대쪽에 페이크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오늘 두 번의 상황에서 실제로 해냈다”며 “습득력이 빠르고 농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정성조는 프로농구 최초의 동호회 출신 비선출 선수다. 중학교 때 학교 농구부에서 3개월간 운동을 한 게 그가 받은 엘리트 체육 교육 전부다. 데뷔 전 주로 3X3 농구를 했던 만큼 처음에는 프로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단 안팎의 우려도 있었다.
정성조가 15분 이상의 출전 시간을 받은 건 전날 경기가 처음이다. 에이스인 이정현과 주장 정희재, 강력한 신인왕 후보인 1라운더 신인 이근준까지 주전급 선수들이 줄부상을 당하면서 소노는 고육지책으로 정성조 카드를 꺼냈다.
정성조는 팀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신이 난 듯 코트를 누비며 걱정을 불식했다. 클러치 상황에서도 겁먹지 않는 패기와 역습 기회를 놓치지 않는 빠른 움직임이 돋보였다.
만신창이가 된 소노는 사실상 ‘이재도 원툴’로 한 경기 한 경기를 버티고 있다. 이정현은 복귀까지 최소 3주가 예상된다. 정성조가 꾸준한 경기력으로 새로운 공격 옵션이 돼준다면 소노는 조금이나마 숨을 돌릴 여유를 찾을 수 있다. 김 감독은 전날 “성조가 확실히 잘해줘서 재도가 쉴 시간이 많아졌다”며 “성조가 성장해주는 것이 팀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정성조는 드래프트에서 선발된 직후 인터뷰에서 “제가 어려운 한계를 넘어서서 프로 데뷔를 했는데 다음에도 동호회 출신 프로 선수가 나오면 좋겠다”며 “그래야 선순환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인 의존도가 높은 한국 농구는 ‘저변 부족’ 등이 겹치며 위기 진단을 받고 있다. 하지만 비선출 ‘프로 선수 정성조’의 성장은 한국 농구 생태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