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의 외교만사 外交萬思]망국에 이르는 길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시도는 실패했지만 친위 쿠데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국은 건국 이래 성공적인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 과정을 밟으면서 서구권에 비견하는 국가역량을 갖게 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K팝, K문화, K푸드, K드라마·영화 등이 연달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소프트 파워는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게다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무역역량, 군사력을 고려하면 단군 이래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국력을 바탕으로 윤석열 정부는 “글로벌 중추국가 구상”이라는 담대한 비전을 제시하였다. 세계 민주주의는 중국과 권위주의 국가들의 부상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윤 대통령은 시간이 날 때마다 자유와 민주를 강조하면서 마치 깃발을 들고 돌격하는 용맹스러운 십자군 기사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러시아나 중국과의 갈등과 충돌도 마다하지 않았다. 북한은 적으로 돌려세웠다. 미국과 일본은 이러한 한국 외교에 환호하였다. 자신들조차도 할 수 없는 대담함과 이익을 윤석열 외교가 대신 구현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계엄 시도는 이 모든 찬사를 조롱으로 바뀌게 하였다. 윤 대통령이 그렇게 외쳤던 자유와 민주는 그 자신조차도 이해하지 못한 허구였다. 그간 한국이 쌓아올린 민주주의 제도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찬사는 ‘계엄’이란 단어 앞에 허상이 되었다. 제3세계 국가들조차도 이제는 ‘계엄’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다. 그런데 이 단어가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돌출해 나오고, 이를 지지하는 부류들이 많다는 것 자체가 한국의 민주주의 문화와 정신은 아직 채 꽃피우지도 못했고, 여물지도 않았다는 인상을 세계인들에게 심어주었을 것이다.

계엄으로 한국 위상에 큰 타격

현 사태를 빠르게 수습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 쿠데타를 진행형으로 만든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무능은 세계의 조소거리가 되고 있다. 실패한 계엄을 일으킨 인물들은 법과 상식을 넘어 저항하면서 반전을 꾀하고 있다. 야당 지도자는 과반수 이상의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고, 극단 보수와 여당은 실패한 계엄을 정당화하려 결집하고 있다. 세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전개되면서 대한민국 국격은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최근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현 탄핵 반대와 지지의 대립 국면에서 친미(親美) 대 친중(親中)의 프레임으로 이 구도를 재설정하려는 움직임이 상당히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붙여도 계엄과 내란 시도를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것은 명분이 서지 않는다. 아마 세계 민주주의 일반의 상식으로 판단한다면 조소거리일 것이다. 따라서 탄핵 반대 세력이 찾아낸 천재적인 돌파구는 이 구도를 친중(親中) 대 반중(反中)의 구도로 전환하는 것이다. 반중을 기치로 내건 트럼프의 지지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계엄의 명분으로 내세운 중국발 안보 우려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권을 잡으면 대한민국을 중국에 넘길 것이라던가, 중국이 우리 선거에 개입해 결과를 바꿨다던가 하는 식의 아직 발생하지 않았거나 검증되지 않은 사실들이 실재인 것처럼 치부한다. 그리고 이미 드러난 국가적 범죄 사안을 덮고자 한다.

반중 프레임은 탄핵 반대 지지자들을 움직일 좋은 명분이긴 하다. 사드사태 이후 대한민국 국민의 70~80%는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중국의 점증하는 국력과 영향력도 걱정거리이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한반도의 주요 외침은 주로 북방에서 왔다. 한민족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북방세력(오늘날 중국)과 대규모의 전쟁을 치러왔다. 북방세력에 가장 많은 패배와 인명 손상을 안긴 민족이기도 하다. 남북한을 포함한 한민족의 DNA 속에는 중국의 위협에 대한 공포와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이 역사의 무게감을 홀로 바꿀 수 없다.

위험 요소는 중국보다 트럼프

현재 국제체제 전반에 대한 위협은 중국보다는 트럼프에게서 온다. 수백년 약육강식의 강대국 정치는 1, 2차 세계대전으로 귀결되었다. 미국을 위시한 전승국들이 지구 차원의 살육전이 다시 전개되지 않도록 만든 제도가 유엔이다. 그 핵심적인 원칙은 영토와 주권의 존중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역량을 가졌으면서도 현재 국지전에 머물고 있는 이유도 이런 유엔 체제의 제약과 중국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다. 중국의 외교원칙은 미국과 서방 주도의 세계질서는 반대하지만, 유엔 중심의 국제질서는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그린란드와 파나마 무력 합병, 캐나다의 미국 주로의 편입을 언급하고 있다. 트럼프는 동맹에 대한 존중이 없다. 미국의 이익만 존재할 뿐이다. 이는 주권과 영토보전이라는 전후 국제체제의 핵심 원칙을 파기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아마 그린란드-캐나다-미국 본토-멕시코-파나마에 이르는 그랜드아메리카 합중국을 꿈꿀지도 모른다. 이 구상이 실현된다면, 이미 자체의 완벽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한 세계 유일한 국가인 중국과 경쟁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후 국제질서는 파괴되고, 강대국의 이익에 따라 언제든 무력 사용이 가능한 19세기 약육강식의 세계로 회귀하는 것이다. ‘가치외교’에 따라 러시아와 중국과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미래의 대한민국을 상상해보라. 일본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다시 독도를 군사적으로 강점하려 할 것이다. 중국은 해상 전략망을 구축하기 위해 우리의 서해와 이어도 해역을 독차지하려 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의 본산은 미국이다. 정보력은 세계 최강이다. 중국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킹으로 타국가 정치과정을 변경하려 한다면 반드시 미국에 노출된다. 중국은 세계적으로 궁지에 몰릴 것이다. 중국에 그럴 역량이 존재했다면 윤석열은 이미 대통령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중국의 역량과 의도를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고 미국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 주류 정치인들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하루빨리 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 이 과정이 늦어질수록 트럼프나 주변 외세의 강압에 더 취약한 국가가 된다. 민생은 파탄난다. 5·18민주화운동 이상의 유혈 사태가 날 수도 있다. 당대 최고의 권력과 정보력을 지녔으면서도 자신만의 권력과 이익을 탐해 나라를 망국에 이르게 한 고종이나 이완용 같은 인물들이 안 되려면 말이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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