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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 한 줄기

입력 2025.01.16 20:59

수정 2025.01.16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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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호수 뒤로 지고 있다. 서쪽 하늘로 사라지기 전,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 ⓒ레나

석양이 호수 뒤로 지고 있다. 서쪽 하늘로 사라지기 전,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 ⓒ레나

에밀리 디킨슨의 시 ‘푸른색 한 줄기(A Slash of Blue)’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황금의 물결 ― 하루의 둑 ― 바로 아침 하늘을 만들어내는 것.(A Wave of Gold - A Bank of Day - This just makes out the Morning Sky.)”

에밀리 디킨슨은 서쪽으로 지는 해의 황금빛과 서서히 다가오는 밤의 푸른빛이 섞인 저녁 하늘을 묘사하면서, 일몰의 태양이 다음날을 만들어낸다고 노래한다. 떠오르는 해는 일반적으로 희망이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매년 새해 첫날이 되면 일출 사진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새로운 시작, 떠오르는 희망, 어쩌면 새해에는 더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 그러나 해가 떠오르기 위해서는 그 전날 해가 사라져야만 한다. 아침 하늘의 청량한 빛은 황금의 물결과 푸른빛이 섞인 황홀하고도 차가운 저녁을 거쳐야 올 수 있는 법이다.

한국어 ‘해’의 어원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언어학자들은 ‘해’는 한자어 ‘년(年)’의 훈독으로 순수고유어라고 말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이 순환되는 것에서 왔다는 의견도 있고, 태양(太陽)을 뜻하는 고유어에서 왔다는 의견도 있다. 단어의 시작은 추측할 수밖에 없으니 어떤 것이 정답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으나, ‘해’라는 단어는 한 계절의 처음과 끝이나 해가 뜨고 지는 것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보인다.

계절과 시간은 반복된다. 끝이라는 순간을 지나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새해’는 반드시 ‘지난해’를 갖는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사라지는 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순간은 찬란하고 눈이 부시지만, 시작을 위해서는 반드시 끝나는 것이 있다. 사라지면서 화려하게 빛을 발하는 저녁 해의 퇴장은 그래서 숭고하다.

그래서일까. 지는 해를 바라보는 일을 좋아한다. 하늘을 밝히며 화려하게 등장하는 아침 해는 바라보기에 부담스럽지만, 지는 해의 붉은빛은 명도가 낮고 채도가 진해 슬픈 느낌을 자아낸다.

지는 해를 바라보다 보면 ‘내려오는 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형기의 ‘낙화’가 알려주듯이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고 성숙하다. 인생의 중반이 지나면서 만남보다는 헤어짐이 잦아지고,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 끝마무리가 좋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이야 매한가지겠지만, 한 해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내 자리가 아니라면 미련 없이 내려놔야겠다는 다짐도 하면서.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가 많아 유난히 추웠던 2024년의 겨울이 가고 을사년(乙巳年), 푸른 뱀의 해가 왔다. 뱀이 허물을 벗는 건, 살아가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2025년에는 그간의 허물을 떨쳐내고 새로이 태어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해가 질 무렵에 황금빛이 섞인 푸른 석양을 웃으며 보낼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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