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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지금도 ‘어쩔 수 없는’ 명령은 없다

입력 2025.01.17 08:00

수정 2025.01.1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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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에 따랐을 뿐!?

에밀리 A. 캐스파 지음 | 이성민 옮김 | 동아시아 | 380쪽 | 2만원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전범 재판정에서 나치 대학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을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전범 재판정에서 나치 대학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을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대통령 윤석열의 내란 사태에 가담한 군 장성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명령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예컨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군인은 이게 지금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위기 상황이지 않나. 그러면 본인들은 그 명령을 따라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도 정보사 대령 2명에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점거를 위한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면서 “명령이 있으면 군인은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이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아무런 면책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상식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홀로코스트 실행 책임자로 전후 재판을 통해 교수형을 당한 아돌프 아이히만을 비롯해 전쟁범죄 혐의로 법정에 선 나치 고위 간부들은 “Befehl ist Befehl(명령은 명령이다)”라는 말로 자신을 변호했다. 1994년 르완다에서 후투족에 의한 투치족 집단학살이 벌어져 불과 몇 개월 동안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도 가해자들은 강압적인 정부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변명했다.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 진(1922~2010)의 말처럼 “역사적으로 전쟁, 집단학살, 노예제도 같은 가장 끔찍한 일들은 불복종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복종 때문에 일어났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부당한 명령에 복종해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일까. 벨기에 겐트대학교의 실험심리학과 부교수 에밀리 A. 캐스파가 쓴 <명령에 따랐을 뿐!?>은 명령-복종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방식을 신경과학적으로 살핀 책이다. ‘부당한 명령에 저항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주장을 반복하는 대신 “다른 사람을 해치라는 명령을 수용하고 그것에 복종한 사람의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권위적 명령에 의해 가학적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미국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의 유명한 ‘복종 실험’에 의해 잘 알려져 있다. 1960년대 밀그램은 학생 역할의 피실험자를 의자에 묶고 선생 역할을 맡은 피실험자가 학생이 문제를 맞히지 못하면 전기 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했다. 실험자들은 선생 역할 피실험자가 전기충격을 거부할 경우 ‘계속 진행하라’고 압박했다. 학생 역할 피실험자는 배우였고 전기 충격 장치도 가짜였으나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선생 역할 피실험자 중 무려 65%가 치사량의 전압인 450볼트까지 전압을 올린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집단학살 가해자들이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처벌을 피하기 위한 꼼수만은 아니다. 저자가 MRI 스캐너 등을 사용해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들의 뇌를 촬영했더니 주체의식 및 책임감과 관련된 전두엽 내측 전두회의 활동이 크게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명령에 따르는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의 행동 결과에 대해 책임감을 덜 느낄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반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내측 전두회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명령에 복종하는 행위는 도덕적 죄책감도 약화시킨다. 죄책감을 느끼면 뇌의 측두두정 영역이나 배측방 전전두엽 피질, 쐐기앞소엽, 전측 섬 및 전대상 피질 등 변연계가 활성화되는데, 명령에 복종할 경우에는 자유롭게 결정했을 때와 비교해 이들 뇌 영역의 활동이 감소하는 것이 관찰됐다.

이처럼 주체의식·책임감·죄책감이 줄어드는 현상은 명령을 내리는 자의 뇌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된다. 특히 계층 구조에서는 명령을 내리는 자, 명령을 전달하는 중간자, 명령을 실행하는 자 등 계층 구조에 속한 모든 사람에게서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관찰됐다. 이는 계층적 구조에서는 “주체성과 도덕적 감정이 두 명 이상의 사람에게 분산되기 때문”이다.

벨기에 사관학교 1학년 생도들을 상대로 실험한 결과도 특기할 만하다. 저자는 사관생도를 두 그룹으로 나눠 절반은 장교의 명령을 받게 하고 나머지 절반은 민간인의 명령을 받게 했다. 흥미롭게도 명령을 내리는 주체가 장교냐 민간인이냐와 관계 없이 사관생도들의 주체성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한 개인이 다른 사람의 명령을 따르기로 동의하면 그 복종이 주체의식에 미치는 효과는 누구의 명령인지와 상관없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명령하고 명령받는 뇌에서 주체성이 감소하는 현상이 관찰됐다고 해서 저자가 가해자들의 잔혹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서론에서 “이 책의 핵심 전제는 인간이 행동을 수행할 때 명령을 따를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인간 자신이라는 점”이라면서 “복종에 의해 끔찍한 행동을 저지르는 이유를 설명하는 신경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것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에게 변명이나 탈출구를 주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역사에는 부당한 명령에 저항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불법 비상계엄 선포시 비상소집이 있을 때 “계엄과 관련한 불법적인 명령과 지시는 따를 수 없다”면서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이후 방송 인터뷰에서 “출발 자체가 위법한 명령이라면 그 뒷부분이 통상적인 공무원 업무라도 그것을 따르는 것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의 간수와 같은 입장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란의 밤에 동원된 군인들과 윤석열 2차 체포영장 집행 당시 대다수 경호관들도 불의한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책과 삶] 과거에도 지금도 ‘어쩔 수 없는’ 명령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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