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연합 ‘불신임’ 노선 이탈한 사회당
국민연합도 표결 불참 “예산안 지켜보겠다”
LFI “바이루·마크롱 떠날 때까지 싸울 것”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 EPA연합뉴스
지난달 임명된 새 프랑스 총리가 불신임 투표에서 살아남으면서 첫 정치적 고비를 넘겼다. 다만 여야 간 극심한 대치 속에 예산안 통과라는 또 다른 과제가 남아 있어 여전히 위태로운 지위에 놓여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랑스24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프랑스 극좌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가 제출한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의 불신임안이 16일(현지시간) 전체 의석 557석 중 131표를 얻어 하원에서 부결됐다. 총리 불신임안이 통과되려면 288표가 필요하다.
이날 불신임 투표는 LFI가 함께 소속된 좌파연합 신인민전선(NFP)의 4개 정당 중 사회당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NFP 소속 녹색당과 공산당만 LFI와 함께 불신임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들 정당은 바이루 총리가 지난 14일 발표한 새 정부의 정책 구상에 ‘연금 개혁 중단’ 등 자신들의 요구 사항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반발해왔다.
바이루 총리는 지난 14일 첫 정책 연설에서 진통 끝에 2023년 통과된 연급 개혁안에 대해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노조·경영자단체·사회단체 등을 포함한 재협상을 제안했다. 이를 두고 좌파연합 중 그나마 온건파인 사회당을 설득하기 위한 카드라는 해석이 나왔다. 바이루 총리는 지난달 정부 수반에 오른 후, 사회당에 일부 정책적 양보를 하는 대신 불신임 표결에서 지지를 얻으려 애써왔다.
올리비에 포르 사회당 대표는 불신임안 표결에 앞서 “얻을 수 없던 양보를 (정부로부터) 끌어냈다”라며 바이루 총리가 대안 가능성을 열어준 만큼 불신임안에 찬성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다만 “필요하면 우리는 언제든 정부 불신임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루 총리는 불신임안 표결에서 사회당의 이탈을 두고 “이해를 향한 또 다른 길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극좌 정당을 향해선 “프랑스를 내분의 길로 이끌려 한다”고 비판했다.
단일 정당으로 가장 많은 의석을 보유한 극우 성향의 야당 국민연합(RN) 역시 이번 불신임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RN은 바이루 총리의 구체적인 정책 제안을 알기 전에 그를 축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RN 소속 장 필립 탕기 의원은 “불신임 투표가 화제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 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바이루 정부는 당장의 위기는 넘겼지만 2025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2차 고비가 남아있다. 프랑스는 아직 2025년도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한 상태다. 지난해 하반기 미셸 바르니에 전 총리 시절 긴축 예산안이 하원에 제출됐으나, 야당이 반발하며 62년 만에 정부 불신임안이 통과됐고 지난달 초 내각 전체가 해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AP연합뉴스
LFI는 불신임안 부결 후에도 강경한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장뤼크 멜량숑 LFI 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옛 트위터)에 “사회당이 NFP를 해체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당 혼자 항복하는 것이며, 나머지 세 정당은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며 “우리는 바이루가 떠나고 에마뉘엘 마크롱(프랑스 대통령)도 떠나길 원한다”고 했다.
의회의 또 다른 축이자 좌파 연합과 합세해 앞선 바르니에 정부를 해산시킨 RN 역시 2025년도 예산안에 요구사항이 반영되지 않으면 정부 불신임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탕기 의원은 2025년도 예산안 발표가 “진실의 순간”이 될 것이라며 RN은 언제든 돌아설 수 있다고 압박했다.
바이루 총리는 올해 지속 가능한 예산 계획을 최우선 순위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정책 연설 당시 부채를 “다모클레스의 검(일촉즉발의 절박한 상황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비유하면서 “걱정해야 할 일이 많지만 가장 심각한 건 과도한 부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올해 공공부문 적자 목표를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5.4%로 설정한다고 전했다. 바르니에 전임 총리의 목표치(5.0%)보다 다소 늘어난 수준이다.
프랑스에선 지난해 7월 조기 총선에서 어느 정당도 단독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이후 정국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지난해 6월 자신의 의회 해산 결정이 “분열과 불안정을 초래했다”고 인정했다. 프랑스에서 1997년 이후 27년 만에 이뤄진 의회 해산은 당시 RN의 상승세를 꺾기 위한 도박에 가까운 승부수로 평가됐다. 프랑스는 헌법에 따라 올해 7월에나 새 선거를 실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