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전쟁 시민사회 네트워크가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 삼거리에서 응우옌티탄씨가 제기한 국가배상소송 항소심 선고 후 응우옌티탄씨와 화상 통화를 하고 있다. 김나연 기자
정부가 1968년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게 학살당한 베트남인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항소심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2023년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 사건 발생 55년 만에 나온 이후 법원은 다시 한번 같은 판단을 내놓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3-1부(재판장 이중민)는 17일 베트남인 응우옌티탄씨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정부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마찬가지로 응우옌씨가 청구한 3000만100원을 국가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968년 2월12일 베트남 꽝남성 퐁니 마을에서 살고 있던 응우옌씨는 7세 나이에 엄마와 언니, 남동생을 한 번에 잃었다.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한국군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 군인들이 마을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40년 후 응우옌씨는 퐁니 마을에서 군인들에 의해 총 74명이 학살당했다고 주장하며 한국에 와서 직접 피해를 증언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베트남에 진 빚이 있다”는 취지로 우회적으로 사과한 적이 있지만 응우옌씨가 직접 나서면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책임론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2020년 응우옌씨는 ‘퐁니 사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이 공식적으로 인정돼야 한다며 정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은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정부는 북베트남에 동조하는 베트콩이 한국군으로 위장해 민간인을 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대한민국 해병 2여단 1중대 소속 군인들이 작전을 수행하던 중 원고와 가족들로 하여금 방공호 밖으로 나오라 명령한 뒤 현장에서 바로 이들에게 총격을 가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응우옌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정부는 항소했다. 정부는 퐁니 마을에서 교전상황이 있어 한국군이 정당방위를 한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미 응우옌씨의 국가배상 청구 소멸시효가 만료돼 소송이 무효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항소심은 정부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피해 주민의 연령, 성별, 무장 상태, 해병 제2여단의 피해 발생 여부 등을 고려할 때 교전상황이었음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응우옌씨가 당시 7세에 불과했고, 국교 단절 등으로 그간 국가배상을 청구할 수 없었던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정부 주장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응우옌씨를 대리한 김남주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정부는 전쟁 중 국가가 한 행위는 면책된다는 식의 주장을 했지만, 오늘 재판부가 전쟁에서 국가의 불법행위는 면책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현재 베트남에 거주 중인 응우옌씨는 대리인단과의 화상 통화에서 “오늘 승소로 그날 희생된 원혼들도 위로받았을 것”이라며 “재판부에서 퐁니 사건을 잘 살펴주신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