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세력 껴안은 머스크…정치지형 깨지는 유럽

박은경 기자

SNS와 자금력 결합한 머스크의 정치적 파급력 앞세워

경제적 이익 극대화 전략…유럽선 대응 쉽잖아 딜레마

일론 머스크(오른쪽)가 지난해 11월 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스페이스X의 스타십 6차 발사를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론 머스크(오른쪽)가 지난해 11월 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스페이스X의 스타십 6차 발사를 지켜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주간경향] 그간 유럽 국가들은 ‘장기적 위협국’으로 분류한 중국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실질적 위협국’이 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는 데 집중해왔다. 그러나 이제 유럽은 새로운 위협과 직면하게 됐다.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의 정치 변화가 유럽 내부의 정치적 균형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2기’ 실세로 떠오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막대한 자금력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영향력을 앞세워 유럽 극우세력을 지원하며 정치지형에 균열을 내고 있다.

독일에서는 내달 치러질 총선을 앞두고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지지율이 머스크의 발언으로 요동치고 있다. 머스크는 지난달 독일 주간지에 AfD를 “독일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주장하는 기고문을 실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를 “무능한 멍청이”,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을 “반민주적 폭군”이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지난 1월 9일(현지시간)에는 알리스 바이델 AfD 공동대표와 엑스(X·옛 트위터)에서 75분간 생중계 대담을 했다. 대담에서 “독일을 구할 수 있는 건 AfD뿐”이라며 지지를 촉구했다. 이 대담은 200만명 이상이 시청했고, 이후 여론조사에서 AfD의 지지율은 22%로 상승했다. 이는 독일 제1야당인 중도보수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30%)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여론 더 양극화하고 민주주의 위협할 소지

머스크의 유럽 정치 개입은 독일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새해 초부터 엑스에 키어 스타머 영국총리를 비판하는 게시물을 60개 이상 올리며 공세를 퍼부었다. 머스크는 스타머 총리가 과거 왕립검찰청(CPS) 청장 시절 아동 성착취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내각 해산과 조기 총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영국 언론은 해당 사건이 충분한 수사를 거쳐 종결된 사안이며, 영국 국왕은 의회를 일방적으로 해산할 권한이 없다고 짚었다.

머스크가 극우 성향인 영국개혁당에 최대 1억달러(약 1461억원)를 기부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 가운데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영국개혁당의 지지율은 25%로 상승했다. 이는 반년 전인 지난해 7월 총선 지지율(14.3%)보다 크게 오른 수치다.

2억1250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엑스를 통해 유럽 극우세력 부상을 조장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2억1250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엑스를 통해 유럽 극우세력 부상을 조장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머스크의 정치적 개입은 단순한 의견 표명을 넘어선 행동으로, 유럽 극우세력의 부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민 반대 정서와 경제적 불만 등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극우세력을 지지함으로써 여론을 더 양극화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할 소지가 크다.

워싱턴포스트(WP)는 머스크를 “세계 정치를 흔드는 선동가”라고 표현하며 그의 발언과 행동이 기존 민주주의 체제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간 파격적 행보와 혁신적 사업 전략으로 주목받아온 머스크가 유럽 정치에 개입하는 배경에는 경제적 이익 극대화란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일에는 유럽 유일의 테슬라 공장이 있는데 머스크는 AfD 대표와의 대담에서 독일에 테슬라 공장을 건설할 당시 서류 2만5000장을 인쇄해야 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독일 관료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머스크가 소유한 기업의 영향력과 막대한 자금력 그리고 SNS를 통한 파급력이 결합해 머스크의 발언은 더 강해지고 있다. 엑스의 소유주인 머스크는 2억1250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앤드루 채드윅 러프버러대학 교수는 AP통신에 “머스크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공표하기 위해 엑스를 ‘과거 신문 재벌처럼’ 사용하고 있다”며 “자신의 플랫폼에서 다양한 우익 인플루언서를 부각하고 그들의 주장을 유럽 정치 개입의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SNS를 활용해 특정 정치세력을 강화하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AfD의 게시물은 머스크의 재공유(리트윗)를 통해 폭넓게 확산하고 있으며, 일부 극우 인플루언서들은 머스크의 관심을 끌기 위해 영어로 게시물을 작성하고 있다.

유럽, 강력한 법적·사회적 대책 마련 필요성

머스크는 이탈리아와도 경제적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다. 머스크와 친분이 두터운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정부는 스페이스X와 15억유로(약 2조2589억원) 규모의 계약을 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는 스페이스X가 “기술 도약과 기민한 사업 전략, 머스크의 점점 커지는 정치적 영향력 덕분에 글로벌 위성통신시장을 정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선거운동에 2억5000만달러(약 3650억원)가 넘는 자금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진 머스크는 최측근으로 떠올랐다.

과거에 미국은 은밀하게 유럽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지금은 머스크와 같은 금전과 영향력을 앞세운 개인이 노골적으로 유럽 정치에 개입한다. 베를린에 있는 비영리 싱크탱크 세계공공정책연구소(GPPi)의 토르스텐 베너는 독일 주간지 ‘디차이트’에 “머스크 주변세력은 유럽에 혼란을 조성하고, 자유민주주의 엘리트를 제거하려 한다”며 “이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대응은 쉽지 않다. 유럽 지도자들은 머스크의 거친 발언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것이 오히려 그의 의도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이를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렵다. 뉴욕타임스(NYT)는 숄츠 독일 총리가 머스크의 인신공격을 두고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한 점을 ‘유럽 정치인들이 처한 딜레마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전했다.

머스크의 유럽 정치 개입은 단순한 발언을 넘어선 전략적 영향력 행사로 평가받고 있다. 유럽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강력한 법적·사회적 대책을 마련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보호하는 방안을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머스크의 도발은 특정 선거의 승리보다는 최대한의 혼란을 초래하기 위해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의 개입이 유럽 정치지형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경고했다. 독일 유권자들이 ‘미국 억만장자’의 요청만으로 AfD에 투표하지는 않겠지만, 머스크의 SNS가 한때 극단적으로 여겨졌던 담론을 주류로 끌어들이고 여론을 바꾸는 도구로 작용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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