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대통령 윤석열이 지난 15일 경기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조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 윤석열은 사법시험을 아홉 번 만에 붙었다. 말이 9수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가 된 후에도 그는 특유의 집요함을 과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의 모든 단계마다, 모든 절차를 문제삼거나 거부하고, 가능한 이의신청을 모두 내고 있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지만, 대표적 사례만 짚어보자.
헌재 탄핵심판 서류 수취 거부, 공수처 출석요구 3차례 거부, 서울서부지법 체포영장 이의신청, 체포영장 집행 거부, 정계선 헌법재판관 기피 신청, 탄핵심판 변론기일 이의 신청 및 변경 신청, 공수처 조사에서 진술·날인 거부, 서울중앙지법 체포적부심 청구…. 탄핵심판과 수사를 피하기 위해, 30여년간 법률가로서 쌓아온 법지식과 법기술을 온통 ‘투하’하는 중이다.
노력이 무색하다. 연전연패다. 헌재는 기피·이의 신청 등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심판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공수처와 경찰은 한 차례 집행 실패를 딛고 그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체포적부심을 기각했다. ‘공수처는 내란 혐의 수사권이 없으며, 서울중앙지법이 아닌 서울서부지법이 발부한 체포영장은 불법’이라는 윤석열 측 방어 논리는 완전히 깨졌다.
공수처는 17일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법 앞의 평등’이란 헌법 가치를 모독하고, 국가 사법 시스템을 우롱해온 ‘법꾸라지 대통령’은 구속을 눈앞에 둔 처지가 됐다.
윤석열은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반전을 노릴 것이다. 구속영장이 발부돼 수감되면, 구속적부심을 신청할 가능성이 크다. 구속적부심이 기각되면, 건강 문제를 호소하며 보석이나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낼 것이다.
법정형이 사형과 무기징역·무기금고 뿐인 중대범죄 피의자라 해도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것이 한국의 법치주의다. 문제는 윤석열이 사법 시스템 내에서만 다투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이른바 ‘부정선거론’ 등 근거없는 허위 주장으로 극렬 지지층을 선동하고 있다. 탄핵심판 대리인단과 변호인단 역시 앞뒤 안 맞는 궤변으로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탄핵심판에서 파면이 이뤄지고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되더라도 국론분열이 계속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려면 윤석열의 반성과 사죄가 우선이다. 물론 기대하기 어렵다. 윤석열은 극우적 망상을 토대로 스스로 만들어낸 ‘가상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은가.
결국 심판의 역할이 중요하다. 헌재와 법원은 신속하고 공정해야 한다. 동시에 단호해야 한다. 헌재는 증인신문과 변론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궤변이 난무하는 상황을 방치해선 안 된다. 기소 이후 재판을 맡게 될 법원도 마찬가지다.
언론도 제 구실을 해야 한다. 지금 상당수 매체가 기계적 중립이나 균형을 내세우며 내란세력의 음모론과 거짓 주장을 여과 없이 내보내고 있다. 이는 중립·균형 보도가 아니다. 범죄자들의 위헌적·위법적 방어논리를 확대 재생산하는 행태에 불과하다. 불가피하게 보도하더라도 팩트체크 과정을 거쳐 제한적으로 다뤄야 마땅하다.
윤석열의 연전연패는 확정적이다. 그는 대통령직을 잃을 것이다. 평생 감옥에서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극우적 망상 속에서 공동체의 폭력적 전복을 꿈꾸는 이들은 윤석열 말고도 많다. 사법기관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언론도 정신 차릴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