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 자료사진
비동의강간죄(동의하지 않은 성관계는 강간) 도입을 국회에 요청하는 국민동의청원에 동의한 시민들이 5만명을 넘어섰다.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서 국회는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심의하게 된다.
19일 국회전자청원 누리집의 ‘국민동의청원’을 보면, 이날 오전 10시 기준 ‘비동의강간죄 동의에 관한 청원’에 동의수가 5만970명이다. 청원자 김모씨는 “현행 성폭력 범죄의 처벌 기준은 폭행이나 협박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어, 피해자가 명확히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이를 법적으로 처벌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이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지 못하고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초래하며, 성범죄 피해 신고율을 낮추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썼다.
김씨는 또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성범죄 판단 기준을 ‘자유로운 동의의 부재’로 정의할 것을 권고했다”며 “스웨덴, 영국, 스페인 등 선진국은 이미 비동의강간죄를 도입하여 피해자 중심의 법체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대한민국도 국제적 흐름에 발맞추어 비동의강간죄를 도입함으로써,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성범죄 예방 효과를 높이는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향후 비동의강간죄는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돼 심의된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30일 안에 5만명의 동의를 얻은 안건을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해 심의하도록 하는 제도다. 청원 동의는 오는 29일까지 진행된다.
현행 형법 제297조는 강간죄를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경우로 정의한다. 이때 강간죄 성립은 폭행이나 협박을 전제로 한다. 대법원도 ‘가해자의 폭행·협박은 피해자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본다.
형법과 대법원이 강간죄를 협소하게 해석하다보니 강간 피해자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비동의 간음죄의 비동의 판단기준 마련을 위한 국내외 사례연구’(2020년) 보고서를 보면, 66개 피해 사례에서 폭행이나 협박이 행사된 피해 사례는 28.6%였다. 나머지 71.4%는 직접적인 폭행이나 협박 없이 강간 피해가 발생했다.
국회와 정부도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추진하는 듯 했으나 수차례 무산됐다. 여성가족부는 2023년 1월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년)을 발표해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했으나 법무부 반대로 9시간 만에 검토 계획을 철회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4월 10대 공약으로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내세웠다가 “실무진의 착오”를 이유로 공약을 철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