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되자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난동을 부린 19일 새벽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법 난입해 폭력을 휘두른 사태가 발생하자 시민들은 2021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 수천명이 미국 연방의사당을 습격한 사건이 한국에서 재연됐다며 충격에 빠졌다.
시민들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부지법에 무차별 난입해 건물 외벽과 창문, 사무실을 파괴하고 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겠다며 법원 내부를 활보하는 장면을 언론 보도와 유튜브 등을 통해 접하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직장인 이승훈씨(46)는 “남의 나라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하던 폭동이 일어난 걸 보니 황당하고 믿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선 “(극우세력이) 성조기를 흔들더니 트럼프 지지자들과 똑같이 했다”라거나 “법원 습격이야말로 2차 내란”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시민들에게 이번 일이 ‘기시감’이 든 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패배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와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의회를 난입해 폭동을 벌인 것과 판박이처럼 비슷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은 2021년 1월 백악관 인근 공원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부정선거 의혹을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애국자”라고 부르면서 “올바른 일을 할 용기를 내자”고 선동했다. 결국 이들은 1월6일 의회의 대통령 당선자 인준을 막겠다며 연방의사당을 습격했다. 이 과정에서 습격에 가담한 4명이 사망했고 경찰관 1명도 숨졌다. 체포된 인원은 700여명에 달했고 주동자 등 일부는 징역 20년 이상을 선고받았다.
윤 대통령도 지지자들에게 자필 서명 편지를 보내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내용이 담긴 담화 영상을 공개했다. 시민들은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으로 군·경을 동원해 국회 봉쇄를 시도하고, 영장없는 체포, 압수수색, 구금 등을 허용하는 포고령을 발령한 데 대한 반성은 커녕 트럼프 대통령과 비슷하게 지지자들을 자극하고 폭력을 조장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서부지법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와 향후 윤 대통령에 대한 형사재판이 진행될 법원도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극우세력과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한남동 대통령 관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있는 정부과천청사, 서부지법 등 장소를 옮겨가며 집회를 열고 있다. 윤 대통령이 체포되기 전 한남동 관저 인근에선 탄핵 찬성 집회 참석자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어묵 국물을 붓는 등의 폭력이 발생했다. 윤 대통령이 체포된 지난 15일에는 한 남성은 공수처 인근에서 분신을 시도하기도 했다.
직장인 박모씨(35)는 “한 달 사이에 극우 집회 만행이 폭언에서 폭행, 법원 폭동으로까지 심해지고 있다. 이러다 더 많이 결집해서 헌재에까지 쳐들어가겠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헌재 앞에서도 ‘윤석열 석방하라’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든 극우 성향의 시민들이 시위를 이어갔다. 경찰은 헌재에 대한 경비를 강화했다.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방법원 후문에서 윤석열 대통령 구속에 항의하며 법원 청사를 침입해 난동을 부린 시위대가 넘어뜨린 법원 간판을 경찰이 일으키고 있다. 이준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