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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의 길, 트뤼도의 길

2018년 6월 캐나다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독일 총리실은 소셜미디어 계정에 자세한 설명 없이 사진 한 장을 게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팔짱을 낀 채 의자에 앉아 있고 다른 정상들은 맞은편에 서서 트럼프를 내려다보고 있는 장면이었다. 특히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가 트럼프 앞에 놓인 탁자를 양손으로 짚고 노려보듯이 트럼프를 응시하고 있어 이 사진은 수많은 해석을 낳았다. 언론들은 이 사진이 미국과 그 우방국이 관세 등을 둘러싸고 갈등하던 현실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돌아오면서 미국과 유럽의 불화가 재연될 조짐이 보인다. 대통령 취임식(현지시간 20일)이 다가올수록 트럼프의 대유럽 공세는 거세지고 있는데, 발언 수위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7일 그는 덴마크령 그린란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 군사력 동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트럼프의 장남은 보란 듯이 그린란드를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었다.

트럼프는 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이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현행 지침인 2%, 트럼프가 대선 과정에서 주장했던 3%도 한참 웃도는 수치다. 트럼프는 나토 회원국이 국방비를 증액하지 않으면 유럽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대폭 올리거나 나토에서 탈퇴하겠다고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실세로 꼽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도 선 넘는 발언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영국 노동당 정부를 낙마시키려고 마음먹은 듯 “영국은 총선을 다시 해야 한다”면서 극우 영국개혁당을 지지했고, 총선을 한 달여 앞둔 독일의 극우정당 ‘독일을위한대안’도 공개 지지했다.

일반적인 미 대통령 당선인이라면 취임을 앞두고 자신의 권력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 우방국과 철통같은 동맹을 과시하고 자유주의 세계의 적으로 간주되는 국가들에 경고장을 보냈을 것이다. 트럼프는 반대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 일정을 조율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잘 지냈다고 자랑하기 바쁘지만 대서양 동맹 유럽은 힘으로 제압하려 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에게 취임식 초대장도 보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권교체기에 유럽의 리더라고 할 만한 정치 지도자가 없다는 것은 대미 관계에서 유럽을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전통적으로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의 구심점 역할을 했으나 현재 독·불 정상은 국내 지지 기반이 약하고 정치생명이 위태롭다. 독일은 3당 연립정부가 붕괴해 다음달 조기 총선을 치른다. 프랑스 집권여당은 지난해 조기 총선에서 2당으로 밀렸다. 총선 이후 들어선 미셸 바르니에 내각은 의회 불신임 투표로 석 달 만에 붕괴해 최단명 기록을 세웠고, 그 후 출범한 프랑수아 바이루 내각 역시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다.

유럽이 전열을 정비하지 못한 사이 캐나다에선 벌써 트럼프 2.0 시대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트럼프가 캐나다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하자 즉시 미국으로 날아가 트럼프를 설득하는 등 저자세를 취했다가 당내 퇴임 요구에 직면해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무역 질서를 교란하고 안보 환경을 뒤흔들며 이민·기후·환경 등 전 지구적 의제에 관한 국제사회 차원의 협력을 거부할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 거대 정보기술 기업이 앞다퉈 트럼프를 만나고 그에게 거액을 기부해 머지않아 빅테크 규제도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주요한 축이자 환경정책, 산업 규제에 앞장섰던 유럽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때다. 그러나 EU가 트럼프 눈치를 보고 있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EU는 트럼프의 그린란드 매입 발언에 대해 직접적으로 논평하지 않았고, 애플·구글·메타 등 빅테크 반독점 조사도 재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미권에선 미 대통령에게 끌려다니는 정치 지도자를 ‘푸들’이라고 부른다. 2003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부시의 푸들’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주요 유럽 국가와 EU에도 과거의 메르켈처럼 트럼프에게 맞설 것인지, 아니면 블레어의 길을 걸을 것인지 노선을 정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유럽은 트럼프의 푸들을 자처하려던 트뤼도가 9년간의 총리 재임기를 얼마나 허망하게 마감했는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최희진 국제부장

최희진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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