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희망의 수고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닫기

보기 설정

닫기

글자 크기

컬러 모드

컬러 모드

닫기

본문 요약

닫기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닫기

희망의 수고

  • 이설야 시인


[詩想과 세상]희망의 수고

이십육년 동안 구멍가게의 주인이었던 어머니 아버지는
가게를 정리하시며
따로 나가 사는 아들을 위해 따로 챙겨둔 물건을 건네신다

검은 봉지 속에는
칫솔 네 개
행주 네 장
때수건 한 장
구운 김 한 봉지

치르려 해도 값을 치를 수 없는 검은 봉지를 들고
흔들흔들 밤길을 걸었다
문 닫힌 가게 때문에 더 어두워진 거리는
이 빠진 자리처럼 검었다
검은 봉지가 무릎께를 스칠 때마다 검은 물이 스몄다

그늘이건 볕이건 허름하게나마 구멍 속에서 비벼진 시절이 가고
내 구멍가게의 주인공들에게서
마지막인 듯
터질 것처럼
구멍의 파편들이 가득 든 검은 봉지를 받았다

이병률(1967~)


“이십육년 동안 구멍가게”를 하셨던 시인의 부모가 가게를 정리하면서 따로 챙겨둔 물건을 건넨다. 검은 봉지 안에는 칫솔, 행주, 때수건, 구운 김이 담겨 있다. 문 닫은 구멍가게는 “이 빠진 자리처럼 검”다. 시인은 검은 봉지를 들고 어두워진 거리를 걷는다. “봉지가 무릎께를 스칠 때마다 검은 물”이 시인의 가슴에 스며들어 깊은 고랑을 만든다. “검은 물”은 가게와 함께 흘러온 축축한 가족의 내력이자 생활의 다른 이름이다. 생활의 구멍은 점점 커졌지만, 시인의 가족은 희망의 빛들을 조금씩 늘려왔다.

구멍가게는 어린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문턱이 닳도록 넘나들던 일상의 중요한 공간이었다. 전봇대의 전선이나 공중전화의 전화선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었다. 바람도 잠시 쉬었다 가던 구멍가게에서 “구멍의 파편들이 가득 든 검은 봉지”를 들고나오는 시인의 얼굴이 보인다. 동전 하나로도 희망을 주었던 “수고”한 구멍가게의 작은 불빛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반짝인다.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