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인멸 우려’ 인정, 왜

공수처 차량 가로막은 윤석열 지지자들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종료된 지난 18일 밤 서울 마포구 공덕역 인근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소속으로 추정되는 차량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 ‘내란죄 성립 가능’ 해석
수사 거부·외압 차단 의도도
윤, 비상입법기구 쪽지 작성에
“난지 김용현인지 기억 안 나”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구속된 것은 사실상 자초한 성격이 짙다. 그간 12·3 비상계엄 사태에 관한 수사기관 조사와 체포영장 등을 무시와 거부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계엄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확신범’이라는 사실도 구속에 힘을 실었다.
서울서부지법 차은경 부장판사는 이날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사유를 밝혔다. 윤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석 요구에 3회, 검찰 출석 요구에 2회 불응했다. 지난 3일에는 대통령경호처를 동원해 체포영장 집행을 막아 관저 내부의 증거인멸 가능성을 높였다. 윤 대통령 측은 검찰·경찰·공수처 수사가 상당 수준 진행된 데다 직무가 정지돼 증거인멸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을 설득하지 못했다.

법원은 윤 대통령이 불구속 상태가 되면 군·경찰 지휘부가 형사재판에서 진술을 번복하도록 외압을 행사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조지호 경찰청장,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등은 검찰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을 막으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윤 대통령은 여전히 경호처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직 대통령 신분이다. 석방되면 대통령실과 경호처가 보유한 계엄 관련 증거를 확보하는 일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경찰은 지난달 11일 대통령실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윤 대통령이 사용한 비화폰(보안전화) 등을 확보하지 못했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휴대전화를 교체하고 텔레그램 계정을 탈퇴해 증거를 인멸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이 윤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내란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법원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를 인정해야 구속영장을 발부한다. 군·경찰 지휘부의 진술은 물론 국회를 비롯해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포고령 1호’가 핵심 증거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 측은 “비상계엄은 사법심사(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며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가 불법 수사를 벌였다”고 주장했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계엄의 정당성을 확신한 윤 대통령의 태도도 구속 필요성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차 판사는 영장심사 마지막에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직전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현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비상입법기구 예산 마련’ 쪽지를 건넨 사실을 지적하며 “비상입법기구를 창설할 의도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윤 대통령은 “쪽지를 내가 썼는지 김용현 장관이 썼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얼버무린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는 쪽지를 근거로 윤 대통령이 구체적 계획을 세운 ‘확신범’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