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속 국내 ‘산업 기상도’
바이오·반도체 등 9개 ‘흐림’
대한상의 “정부 대응책 시급”
‘환율 리스크’가 국내 산업 전반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당분간 고환율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주요 업종별 협회 12곳과 함께 ‘고환율 기조가 주요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기상도로 표현한 결과, 바이오·반도체·배터리·철강·석유화학·정유·디스플레이·섬유패션·식품 산업은 ‘흐림’, 조선·자동차·기계 산업은 ‘대체로 맑음’으로 나타났다고 20일 밝혔다. 12개 업종 중 ‘맑음’으로 전망되는 산업은 하나도 없었다.
반도체와 배터리, 디스플레이 산업은 고환율에 따른 제조원가 및 해외 생산시설 등 투자비 상승이 우려된다.
고종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략기획실장은 “환율 상승에 따른 단기적 매출 증대 효과는 분명 존재한다”면서도 “반도체 분야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율이 30% 수준으로 생산원가가 증가하고, 미국 등 해외공장 설립에 투자하기 때문에 이런 효과가 상쇄된다”고 분석했다.
김승태 한국배터리협회 정책지원실장은 “광물과 배터리의 판매가격을 연동하는 계약을 통해 환손실을 만회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철강 산업은 고환율 위기까지 덮쳐 채산성 및 재무구조가 악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철강협회는 “철강 수요산업 부진, 중국 과잉생산에 따른 수출단가 인하로 환율 상승의 혜택도 제한받는 상황에서 철광석, 연료탄 등 거의 전량 수입하는 원자재 부담마저 커졌다”고 진단했다.
기초원료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석유화학과 정유 산업에도 먹구름이 몰려왔다. 한국화학산업협회는 “글로벌 공급과잉에 따른 수급 불균형 등을 고려할 때 환율 상승이 수출 증대와 수익성 개선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대한석유협회는 “설비가동률과 투자 축소 가능성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료의약품 수입 의존도가 높은 제약·바이오 산업은 최근 해외 임상시험까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 고환율에 따른 비용 부담이 크다.
반면 조선업은 계약 후 대금의 상당량이 선박 인도 시점에 결제돼 환율 상승으로 인한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국내 생산의 67%를 수출하는 자동차 산업과 수입 원자재 영향이 적은 기계 산업도 환율 상승에 따른 이익을 기대해볼 수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원가 상승에 따른 판매가 상향, 수요시장 위축, 물류비 상승 등 역풍을 우려하고 있다.
이종명 대한상의 산업혁신본부장은 “트럼프 2기에서 관세 인상, 금리 인하 속도 조절 등이 시행되면 당분간 고환율이 지속될 것”이라며 “미국 등 주요국과 통화스와프 라인 확대 추진, 환율 피해 산업에 긴급 운영자금 및 금융지원 제공 등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