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0월1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사열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 내란 공범으로 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계엄 당시 사용했던 노트북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파괴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장관이 파괴한 노트북이 계엄 포고령 작성에 사용됐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은 김 전 장관 외에 포고령을 작성한 다른 인물이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김 전 장관 측은 포고령 초안을 김 전 장관이 직접 작성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21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김 전 장관은 비상계엄이 해제된 이후 자신의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파괴했다. 휴대전화는 다른 사람을 시켜서 망치로 깨트린 것으로 알려졌다. 노트북 역시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파손됐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고검장) 조사에서 휴대전화를 파괴한 이유에 대해 ‘계엄 과정을 비롯한 임무를 완수했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노트북 파괴 사유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자신이 직접 포고령 초안을 작성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신빙성이 낮다는 관측이 제기된 상태다. 평소 그가 직접 타이핑해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한 적이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김 전 장관이 파괴한 노트북으로 다른 누군가가 포고령을 작성했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김 전 장관 측근으로 분류되는 군 관계자 역시 검찰과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조사에서 포고령 제3자 작성 가능성을 진술했다. 이 관계자는 각 수사기관에 김 전 장관으로부터 ‘내가 포고령을 작성했다’는 취지의 말을 전해 들었지만, 그의 평소 성향상 직접 컴퓨터로 포고령 내용을 작성했을 가능성이 적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포고령 작성과 관해선 김 전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 측의 입장이 엇갈린다. 김 전 장관 측은 최근 포고령 1호 작성 경위와 관련해 “김 전 장관이 직접 초안을 작성하고 전체 검토는 당연히 대통령이 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 측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62쪽 분량의 답변서에서 “포고령 1호는 김 전 장관이 종전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이 있을 당시의 예문’을 그대로 베껴 왔다”며 “문구의 잘못을 (윤 대통령이) 부주의로 간과했다. 포고령 표현이 미숙했다”고 밝혔다.
김 전 장관 측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에서 열린 보석심문에서 “계엄 행위 자체가 내란이 될 수 없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김 전 장관 측 변호인들은 “대통령 비상계엄은 사법부가 심사할 수 없고 대통령만 평가할 수 있다”며 “이 과정에서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는 등 적법하게 발령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렇다면 계엄행위는 내란이 될 수 없어서 김 전 장관 혐의는 공소기각 결정 사유가 있거나 무죄”라고 말했다. 반면 검찰은 “김 전 장관은 내란죄에 해당하고, 이미 증거인멸 염려를 인정한 사법부 판단이 수차례 있었다”며 “대통령 수사를 포함해 관련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기존 (구속 기소) 판단을 변경할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