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밥도둑

온라인 청구·결제 서비스 ‘결제선생’은 일반 소비자에겐 생소할지라도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하다. 결제선생은 학원비를 온라인으로 카드 결제할 수 있도록 청구서를 카카오톡 알림 메시지로 보내주는 서비스로, 카카오페이의 자회사 페이민트가 운영한다. 페이민트는 학원가를 중심으로 7만개가 넘는 가맹점과 거래하고 있다. 학부모 A씨는 “이전에는 학원비 할인 신용카드를 사용하려면 학원을 직접 방문하거나 아이에게 카드를 맡겨야 했는데, 결제선생 서비스가 생기면서 결제가 훨씬 쉬워졌다”고 말했다.

온라인 카드 결제가 이미 일상화된 사회에서 결제선생이 새삼 호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의 온라인 결제·정산 서비스와 달리 전자지급결제대행사(PG)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가맹점이 카드 수수료와 별개로 PG사에 지불하는 수수료 0.3%가 절감된다는 장점 때문이다. 기존에는 PG사가 하위 가맹점에게 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제공하고, 카드사로부터 대금을 받아 정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결제선생은 PG사라는 징검다리 없이 오프라인에서와 마찬가지로 카드사가 직접 결제를 승인하고 정산하는 기술을 지원한다.

■희미해지는 카드사-가맹점 징검다리

이처럼 카드사와 가맹점을 연결해 온 PG사 등 징검다리 역할이 점차 희미해지고, 카드사 직승인 방식의 결제가 최근 각광받고 있다. 가맹점 수수료율의 거듭된 인하와 연체율 상승 등 업황 부진으로 비용 절감에 진심인 카드사와, 불경기 속 수익 악화로 PG, 밴(VAN) 수수료라도 조금이나마 아껴보려는 가맹점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결과다.

최근 BC카드는 쿠팡·배달의민족·네이버 등 온라인 대형 가맹점들에 PG사를 건너뛰고 가맹점-카드사 직승인을 지원하는 거래중계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PG사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앞서 지난해 말 PG협회는 성명서를 내고 “BC카드가 NH농협카드 및 주요 은행계 카드사를 대상으로 직매입 영업을 확대하면서 PG사업과 VAN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며 “PG사 본연의 업무에 침투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BC카드의 카드사 직승인 서비스는 PG사 대신 직접 입점사에 대한 결제·정산 업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대형 가맹점의 수요에서 출발했다. 이에 따라 최근 대형 가맹점들은 PG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카드사와 거래할 수 있는 직승인 계약을 맺었는데, 이때 중간에서 가맹점과 카드사 간의 거래데이터를 송수신하는 거래 중계 시스템이 필요해졌다.

일부 카드사들은 이같은 시스템을 직접 구축해 운영하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비용이 부담스러운 카드사의 경우 BC카드에 거래 중계 서비스를 위탁했다. 이에 따라 NH농협카드 등은 BC카드의 중계 서비스를 통해 PG나 VAN 없이 쿠팡 등 대형 가맹점과 직승인 계약을 맺고 PG 등 결제 수수료를 낮출 수 있었다.

PG사들은 카드사들이 PG사 본연의 업무에 침투하고 있다며 강하게 규탄했지만 카드업계의 입장은 다르다. 업계 관계자는 “PG사의 영역을 카드사가 침범하는 것이 아니라, 카드사가 원래 하던 업무를 이제는 외주로 맡기는 대신 직접 하겠다는 것”이라면서 “곧 수수료가 한 차례 더 인하되는 만큼 비용을 아껴야 하는 상황에서의 자구책”이라고 설명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카드사보다는 오히려 PG·VAN사의 독과점이 심각한 시장에서 카드사의 비용 효율화를 위한 비지니스 모델을 반대하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에서도 BC카드의 거래 중계 서비스 위탁 운영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온라인 결제·정산 흐름도 사진 크게보기

온라인 결제·정산 흐름도

■카드사 허리띠 졸라매는 이유?

카드사들이 가맹점 직승인 등을 통해 비용 절감, 효율화에 집중하는 것은 내수 부진으로 영업 환경이 녹록치 않은 데다, 수수료 인하가 또다시 결정됐기 때문이다. 앞서 금융당국은 올해 305만개의 영세·중소가맹점에 대해 연간 총 3000억원 규모의 수수료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이번 수수료 개편 영향으로 개별 카드사 수익에 미칠 영향을 추정했을 때 카드사별로 213억~499억원의 수익 감소가 예상된다. 개별 업체 기준 3개년 평균 당기순이익(2022~2024년 연환산 기준)의 약 5.9~15.0%로, 각 카드사 총자산수익률(ROA)이 약 0.11~0.17%포인트씩 감소하는 수준이다.

이같은 이유로 업계에서는 앞으로 PG사 등 지급 결제 중개업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다만 일부 PG사들은 온라인 중심의 활동 터전을 오프라인으로 옮기며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최근 식당 등에서 확산하는 테이블오더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고객이 앉은 자리에서 주문·결제를 완료하게끔 테이블마다 키오스크 단말기를 배치하거나 큐알(QR)코드 등으로 앱 접속을 유도하는 서비스인데, 이 경우 오프라인 결제임에도 온라인 결제에 주로 쓰이는 PG망이 사용될 수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외식업체 중 무인주문기 사용 비율은 2018년 0.9%에서 2023년 7.8%로 증가했다.

이런 기사 어떠세요?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