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 첫날 “김정은과 잘 지냈다”
“내가 돌아온 것을 그도 반길 것이라 생각”
비핵화 아닌 핵군축 협상 염두에 둔 발언
본격 협상 전까지 북한과 관계 관리 의도
북한, 22일 최고인민회의 대미 메시지 주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취임 후 첫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지칭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적극적인 대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또 북한과의 ‘핵군축’ 협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비핵화가 아닌 핵무기의 감축·동결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오는 22일 최고인민회의(국회 격)에서 미국을 향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취임식 이후 백악관 집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언급하며 “나는 그와 잘 지냈고, 그는 나를 좋아했고 나도 그를 좋아했다”고 밝혔다. 앞서 2018~2019년 1기 집권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3차례 만났고, 이후에도 친서를 주고받으면 관계를 유지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북한 핵 문제에 관해 당부했던 것처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언급한 것이 있느냐’는 취지의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그는 핵보유국(He is a nuclear power)”이라며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지칭했다. 이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른 5개 공인 ‘핵무기 보유국’(nuclear weapon state)과는 다른 개념이지만, NPT 체제 밖에서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를 가리킬 때 언론 등에서 사용하는 비공식 표현이다. 앞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 지명자도 지난 14일(현지시간) 상원 군사위원회 인준 청문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불렀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일컬은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김정은 위원장과 대화 및 협상을 추진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 정부가 그간 추진해온 북한의 비핵화보다 핵군축·핵동결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또한 핵무력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동결하거나 감축하고, 그 대가로 미국이 대북 제재 완화 및 북·미 수교 등을 내걸 수 있다. 그러면 한국은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과 전술핵 등에 노출된 상태가 유지돼 안보 불안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다만 북한의 핵군축·핵동결을 계기로 남북도 군비통제 및 신뢰구축 등을 도모하고 나아가 장기적인 시각에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추진할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을 공언해온 만큼 김 위원장과 마주 앉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도 김 위원장에게 대화 의사를 전달하면서 당분간 북한의 고강도 무력행동 등을 자제토록 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란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본격적인 협상 전에 친서 등을 통해 관계를 관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협상 촉진을 위해 1기 때처럼 북한이 원하는 한·미 연합훈련 유예나 전략자산 전개 중단 등의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 따라 북한이 오는 22일 개최하는 제14기 제12차 최고인민회의에 이목이 집중된다. 김정은 위원장이 시정연설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거나 구체적인 대미 정책을 발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우호적인 메시지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라며 “다만 미국의 대북정책이 아직 불확실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이 아닌, 한·미 연합훈련 등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 등 행동을 보일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낼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23~27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 전원회의에서 “최강경 대미 대응전략이 천명됐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최강경’이라는 표현을 제외하면 기존보다 대미 비난 수위가 낮았다. 트럼프 정부 출범을 앞두고 신중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풀이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을 두고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 비핵화는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일관되게 견지해온 원칙으로 NPT 상 북한은 절대로 핵보유국 지위를 가질 수 없다”라며 “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미국 신행정부와 긴밀히 공조하는 한편, 국제사회와도 계속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