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회의 개회를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1일 여·야·정 국정협의회 가동을 전제로 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편성을 사실상 국회에 제안했다. 기존의 ‘선 예산 집행·후 추경론’ 입장에서 나아간 것으로 평가된다.
최 권한대행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추가 재정투입에 대해서는 국회·정부 국정협의회가 조속히 가동되면 국회와 정부가 함께 논의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최 권한대행은 “어려운 민생 지원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재정투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정치권뿐만 아니라 지자체, 경제계 등 일선 현장에서 제기되고 있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최 권한대행은 추경과 함께 국정협의회 논의 테이블에 올릴 주요 의제로 ‘민생·경제 핵심 법안’을 꼽았다. ‘민생·경제 핵심 법안’으로는 전통시장 신용카드 소득공제 한도를 올리고 반도체기업 등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반도체 산업 주 52시간제 예외 특례 등을 인정한 반도체특별법 제정안, 국가첨단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전력망 구축 사업 인허가 규제를 완화하는 전력망특별법 등을 들었다.
최 권한대행이 추경 편성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여·야·정 국정협의회 실무협의가 지지부진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 지난달 26일 출범하기로 했던 국정협의회는 여야 간 이견으로 한 달째 출범조차 못 하고 있다. 야당은 반도체특별법에 주 52시간제 예외 특례조항을 포함하는 데 부정적이다. 여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관심 사안인 ‘지역화폐·민생회복지원금 예산’을 포함한 추경 편성에 반대한다.
정부 관계자는 “반도체특별법 등 민생·경제 법안이 통과가 안 되고 있으니 야당이 원하는 추가 재정 투입(추경)까지 여·야·정 국정협의회 테이블에 한꺼번에 올려놓고 논의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경제정책 불확실성 해소와 대외신인도 유지를 위해서라도 국제 사회에 여·야·정 협의회를 가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 추경안을 의제로 논의할 수 있다는 ‘당근책’을 야당에 제시한 셈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5조~20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을 촉구한 것도 정부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전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연 1.9%에서 1.6~1.7%로 낮추면서 추경 편성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 된다고 정부에 경고했다. 상반기 들어 경기 침체가 심해지면 기재부 책임론이 커질 수도 있다.
정부도 선제적 추경의 필요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한은 주장처럼 기계적으로 보면 추경은 5월에 편성하는 것보다 1월에 하는 것이 당연히 효과가 크다”면서도 “다만 정책을 펴는 입장에서 지금은 예산 신속 집행을 먼저 해보겠다는 것이고, 추가적인 경기 보강 방안은 1분기 중에 재점검해보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