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7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AI 디지털교과서 검증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의 지위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에 거부권(재의요구)을 행사하면서, AI 디지털교과서의 지위에 대한 결정권이 다시 국회로 넘어갔다. 교육부는 교육격차 심화, 균등한 교육기회와 학습권·수업권 보장 등을 이유로 교과서 지위 유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AI 교과서 검증 및 도입 효과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고, 법적 지위도 불확실한 상태가 이어지면서 새학기 교육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1일 최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야당은 “헌법심판소원 등 모든 방법을 통해 AI 교과서로 발생할 교육 현장의 혼란을 막겠다”고 밝혔다. 또 “정부의 위법적이고 부실한 교육정책을 바로 잡으려 한 국회의 입법권에 제동을 건 최 대행은 교육현장에 닥쳐 올 혼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재표결 법안은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가결된다. 야당은 다음달 중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재표결에 부칠지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AI 교과서는 올해 1학기 초등 3~4학년, 중·고교 1학년 영어·수학·정보 과목에 도입을 앞두고 있다. AI 교과서는 디지털 기기에 AI 대화로봇 등을 넣어 맞춤형 학습을 표방한다. 교육자료가 되면 각 학교는 AI 교과서를 의무 도입하지 않아도 되지만, 교과서 지위를 유지한 AI 교과서는 의무 도입 대상이다.
교육부는 AI 교과서의 교과서 지위가 유지되지 않으면 학습권·수업권 침해, 교육격차 심화와 균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 침해가 일어난다고 도입 필요성을 주장했다. 지난 2년간 많은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교과서 지위를 잃으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되풀이했다.
그러나 교육 전문가들과 현장 교사들은 여전히 준비와 검증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2년간 충분히 준비했다”는 교육부 주장도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권정민 서울교대 교수는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디지털 전환을 한다며 학생들에게 아이패드를 나눠줬다가 실패했던 당시 준비기간이 2년이었다”며 “미국의 디지털 전환 성공 사례에선 최소한 3년의 준비기간과 고등→중등→초등 순으로 시범 도입을 하며 검증기간을 거쳤다”고 했다.
권 교수는 “학교 현장에 강제로 AI 교과서를 도입하는 게 학습권·수업권 침해”라며 “이미 학교에선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교육자료 도입, 교과서 선택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데, 정부가 균등한 교육기회 침해를 내세워 AI 교과서 도입을 강제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했다. 교육부는 지난달 AI 교과서 최종 검정 결과를 발표 이후부터 줄곧 “12월 초에 (시제품 대상 효과성 측정 결과가) 다 공개가 된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데이터는 없었다.
AI 교과서가 교육격차 해소에 어느 정도 효과를 낼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고교 교사인 백승진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정책위원장은 “교육부가 교육격차를 줄이기 위해 AI 교과서를 도입하겠다는 주장과 AI 교과서를 도입하지 않으면 교육격차가 벌어진다는 주장을 교묘하게 섞고 있다”고 했다. 주정흔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선임연구위원은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하는 교육격차를 단순히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보유하지 않아 벌어진다고 주장하는 격”이라고 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개인적 신념에 가까운 정책을 무리하게 현장에 도입하려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교육부 내부에선 “(이 장관에게) AI 교과서 관련된 의견 개진이 어렵다”는 푸념도 나온다. 이 장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에 재직할 때에도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추진했다. 이후에도 학교의 디지털 전환을 다룬 책, 칼럼을 다수 썼다. 지난 6일에는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나 AI 교과서의 교과서 지위 보전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