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콘퍼런스홀에서 열린 IPO·상장폐지 제도개선 공동세미나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당국이 하반기부터 감사의견이 2회 연속 미달인 상장사는 즉시 상장폐지하고,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의 상장 유지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또 기관 투자자들이 공모주 ‘단타’로 기업공개(IPO) 시장을 왜곡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관 투자자의 의무보유 확약을 확대하기로 했다. ‘좀비 기업’의 증시 퇴출을 가속화하고 IPO 제도를 개선해 국내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대만 증시 100% 오를 때 3% 오른 국내 증시

금융당국과 관계기관은 21일 IPO·상장폐지 제도개선 세미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금융당국이 대대적인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은 주식시장 진입보다 퇴출이 어려운 상장시스템으로 인해 국내 증시가 정체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2019년 말부터 5년간 한국의 상장회사 수 증가율은 17.7%로 일본(6.8%), 대만(8.7%) 등에 비해 높다. 상장사가 늘면서 시가총액은 이 기간 34.8% 커졌지만 주가지수는 3.8% 오르는데에 그쳤다. 질적 수준은 그대로인 채 덩치만 커진 것이다.
시총 500억·매출액 300억 미달 ‘코스피 퇴출’

금융위원회 제공
개선안에 따르면 하반기부터 코스피·코스닥시장 상장사에 감사의견이 2회 연속 적정이 아닌 한정, 부적정, 의견거절 등 미달로 나오는 경우 해당 기업은 즉시 상장 폐지된다.
또 상장 유지를 위한 시가총액, 매출액 요건이 단계적으로 최고 10배 높아진다. 코스피 상장 유지를 위한 시가총액은 현행 50억원에서 단계적으로 2028년까지 500억원으로 상향 조정된다. 상장유지를 위한 매출액 기준도 현행 50억원에서 2029년까지 단계적으로 300억원으로 오른다. 코스닥시장도 현행 상장유지 기준인 시가총액 40억원, 매출액 30억원을 시가총액 2028년 300억원, 매출액 2029년 100억원으로 상향한다. 다만 성장 잠재력은 높지만 매출이 적은 기업을 고려해 최소 시가총액 요건(코스피 1000억원, 코스닥 600억원)을 충족하는 경우 매출액 요건을 면제한다. 이렇게 하면 2029년까지 코스피 상장사의 8%(62사), 코스닥의 7%(137사)가 퇴출될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또 4월부터는 코스피 상장사에 상장 적격성 실질 심사에서 부여하는 개선 기간을 최장 4년에서 2년으로 단축한다. 코스닥 상장사 심사는 현행 3심제에서 2심제로 축소하면서 최대 개선기간도 2년에서 1년6개월로 줄이기로 했다. 상장폐지 심사가 비효율적으로 장기화하는 문제를 개선한다는 취지다.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상폐 심사 중 투자자에 대한 정보 공시를 확대하고, 상폐되더라도 비상장 거래가 가능하도록 연계하기로 했다.
기관 의무보호 확대로 ‘뻥튀기 공모가’ 막는다

금융위원회 제공
이와 함께 당국은 상장 당일에만 주가가 급등한 뒤 지속적으로 주가가 하락하는 IPO ‘단타’를 방지하기 위해 기관 투자자의 의무보유 확약을 늘리기로 했다. 지난해 IPO 기업의 96%에서 기관 투자자가 상장 당일 ‘팔자’에 나서면서, 공모가가 뻥튀기 되고 시장이 왜곡된다는 우려가 컸다. 이에 의무보유 확약 우선배정제도를 신설해 기관 배정물량의 40% 이상을 확약한 기관투자가에 우선배정하고, 위반시 제재도 강화하기로 했다.
공모가가 뻥튀기 되지 않도록 보호예수를 조건으로 물량을 사전에 배정해주는 ‘코너스톤투자자’ 제도와 사전수요예측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상장 주관사의 의무보유를 강화해 합리적인 공모가를 산정하도록 했다.
일각에선 상장유지 기준이 강화되면서 우량기업이 퇴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준만 코스닥협회 상무는 “코스닥시장의 경우 기업가치가 시장에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정상적이고 잠재력있는 기업도 시총 때문에 상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복상장을 줄이는 방식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은 사모펀드 등에 추후 상장을 조건으로 비상장 우량 사업부의 일부 지분을 매각하면서 IPO가 투자 회수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비판이 컸다. 이로 인한 모회사와 자회사 중복상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대표적인 요인으로 꼽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