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은 천재”···조성진이 말한 이유

백승찬 선임기자

처음으로 전곡 녹음한 작곡가

“지적인 완벽주의자…3시간 공연 도전”

손열음의 고잉홈 프로젝트는 관현악 전곡 연주

피아니스트 조성진. (C)BenWolf

피아니스트 조성진. (C)BenWolf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전곡을 연주하고 녹음한 첫 작곡가는 바흐, 베토벤이 아닌 라벨(1875~1937)이다. 조성진은 “라벨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가 얼마나 천재였는지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올해는 라벨 탄생 150주년이다. 조성진은 지난 17일 발매된 독주 전곡집과 다음달 발매할 피아노 협주곡집(안드리스 넬손스가 지휘하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라벨을 기념한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 등이 이끄는 고잉홈 프로젝트는 올해 라벨의 관현악 전곡을 연주하고, 서울시립교향악단과 KBS교향악단 등 한국의 대표적인 오케스트라도 라벨의 곡을 프로그램에 넣었다.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는 조성진은 20일 한국 기자들과 화상으로 만나 라벨에 빠진 순간을 돌아봤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 리스트를 연주하던 초등학교 5학년 조성진은 라벨의 ‘거울’ 중 ‘어릿광대의 아침 노래’를 처음 접한 순간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느꼈다”. 라벨 피아노곡의 테크닉이 유독 어렵게 느껴졌고, 그걸 익히는 게 신났다. “어릴 때는 비르투오소적인(기교가 현란한) 곡을 좋아하는 게 당연”했기에, 예원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교실에서 ‘밤의 가스파르’ 중 ‘스카르보’를 치면서 기술을 자랑했다. 이후 조성진은 프랑스의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으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라벨, 드뷔시 등 프랑스 작곡가의 곡을 한층 더 자연스럽게 접했다.

동시대를 살았던 라벨과 드뷔시는 흔히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으로 묶이지만, 조성진은 “라벨과 드뷔시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성진은 2017년 드뷔시 피아노 작품집도 낸 적이 있다. 조성진은 “드뷔시가 자유롭고 로맨틱하다면, 라벨은 지적인 완벽주의자”라며 “라벨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았다. 모든 음악이 굉장히 잘 짜여 있다”고 설명했다.

“피아노곡뿐 아니라 오케스트라곡 악보를 봐도 라벨은 어떤 부분은 어떤 악기로 연주하는 것이 어울리는지 너무나 잘 파악한 사람이에요. 드뷔시 음악은 추상적인 면이 있어서 상상력을 더 발휘해야 하지만, 라벨은 연주 방법이 아주 명확해요.”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

프랑스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

조성진은 “바흐의 경우 연주자마다 다르게 생각해 해석의 폭이 넓을 수 있지만, 라벨은 해석의 폭이 넓지 않다”고 말했다. 라벨 제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라벨은 연주자가 악보 지시대로 연주하지 않는 걸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조성진은 “라벨 해석에서 중요한 것은 컬러, 소리, 질감이다. 그걸로 승부를 봐야 했다”고 말했다. 조성진은 이번 독주 전곡집에 곡을 작곡 순서대로 수록했다. 올해 세계 곳곳에서 여는 리사이틀에서도 이대로 연주한다. 인터미션 2회를 포함해 총 3시간이 걸리는 공연이다. 조성진은 “이미 한 차례 공연을 해봤는데 마지막 곡을 연주할 때는 정신이 혼미했지만, 하고 나니까 굉장히 뿌듯했다”며 웃었다.

조성진의 음반·공연이 라벨의 피아노 세계를 만끽할 기회라면, 고잉홈 프로젝트와 서울시향·KBS교향악단 공연에선 라벨 관현악의 풍성함을 접할 수 있다. 지난해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했던 고잉홈 프로젝트는 다음달 26일을 시작으로 올해 4차례에 걸쳐 라벨 관현악 전곡을 들려준다. 서울시향은 5월 ‘고귀하고 감상적인 왈츠’, 6월 현악 사중주를 연주한다. KBS교향악단은 7월 정기연주회에서 ‘볼레로’를 들려준다.

다만 150주년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하면, 고잉홈 프로젝트를 제외한 교향악단의 라벨 프로그램이 풍성하진 않은 편이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다양한 음악을 선보여야 하는 시립교향악단 특성상, 프랑스 인상주의 성향이 강한 라벨 음악을 자주 편성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는 “드뷔시가 정해진 틀을 벗어나 작곡하기도 했다면, 라벨은 형식을 먼저 정하고 음과 감수성을 넣었다”고 말했다. 양창섭 음악 칼럼니스트는 “라벨의 피아노 음악은 기교적으로 어려운 곡이 많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곡도 있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관현악곡에선 정밀하게 계산된 음향과 효과를 보여 오케스트레이션의 대가다운 면모를 나타낸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C)BenWolf

피아니스트 조성진. (C)BenW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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