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이나 농산물 시장에서 거래량과 유동성이 적은 시장을 ‘얇은(thin)’ 시장이라고 한다. 이는 가격 편의(bias), 시장 조작, 가격 변동성, 신속한 데이터와 정보 수집의 제한, 일관성 없는 가치 평가 등 시장 작동을 원활하지 못하게 하는 여러 문제를 양산한다. 부동산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거래가격이 시장 가치를 잘 대변한다고 가정하는 거래사례비교법에 따라 가치를 평가한다. 이 경우 거래자료가 중요한데, 거래가 적어 가치를 평가할 때 비교할 수 있는 부동산이 드문 상황을 가리켜 얇은 시장이라 한다. 호텔, 창고, 공장 등 특수 부동산을 논외로 하면, 이처럼 거래가 드물고 정보가 제한적인 부동산 거래의 대표 사례는 고가 비주거용 상가 또는 단독·공동주택, 저가 신축 빌라 등이다. 얇은 시장을 결정하는 것은 거래량, 인구, 소득, 환경 등과 같은 시장 수급 요인, 그리고 단독주택과 아파트처럼 고유한 부동산 유형 등이다.
이러한 얇은 시장에서의 부동산 가치 평가는 ‘현실 유지 편의’와 ‘고객의 영향력’ 문제가 있다. 현실 유지 편의는 가치 평가자가 부적절한 출발점에 영향을 받는, 즉 초기 조건에 얽매여 이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거래가 드문 부동산 가치 평가에서 다른 평가자의 가치 추정, 고객 견해, 호가 등과 같은 가용 정보를 활용해 임의적인 출발점이 설정되는 것이다. 이러면 해당 부동산의 가치 평가가 시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가격 편의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가치 평가는 최소한 비교 가능한 거래에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택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여 시장 조작의 기회를 열어줄 수가 있다. 반면 고객의 영향력 문제는 고객과의 직접 상호작용으로 평가자가 최초 가치 평가에 대한 조정이나 수정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고객이 정보를 선별 또는 전략적으로 제공하거나 가치 평가에 대한 선호를 제시하면, 가치 평가자가 이심전심으로 이를 수용하는 도덕적 해이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2024년 4분기에 뜻밖에도 서울 서초구 아파트 거래 중 증여 거래가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는데, 주된 이유가 국세청이 2025년부터 감정평가를 통해 거래량이 적어 시가 파악이 힘든 초고가 아파트와 단독주택에 대한 증여세 산정 방식을 강화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감정가는 대체로 시세의 80~90%여서 공시가보다는 높다. 증여세는 시세로 세금이 부과되지만, 초고가 주택이나 상가는 거래가 드물어 힘든 시세 파악으로 공시가로 증여세를 매길 수 있다. 이에 따라 고자산가는 이제까지 세 부담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이처럼 초고가 주택 공시가는 대체로 하향 편의되어 시세보다 크게 낮다. 가령 서울 용산구 나인원한남 273㎡ 면적의 추정 시가는 220억원이지만 공시가는 86억원 정도다. 거래가 활발해 공시가격은 이곳과 큰 차이가 없지만 시가는 더 낮은 주택과 비교하면 “시세는 더 비싼데 증여세는 덜 내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매우 낮은 공시가로 재산세가 부과되므로 고자산가는 재산세 실효세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초고가 주택의 얇은 시장은 과세에서 수평적·수직적 공평성의 원리를 무너뜨리고 있다.
2024년 6월 황운하 의원이 공개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자료에 따르면, 과다 감정평가로 인한 보증보험 사고액이 2019년 23억원에서 2023년 1조1192억원으로 늘어났다. 최근 전세사기의 온상으로 지목된 2억원 이하 신축 빌라와 같이 공시가가 없는 건축물 감정가가 시세보다 높으면, HUG 보증금 설정 한도가 높아지고 임차인은 실제 물권 가치보다 더 많은 돈을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전세사기가 쉽게 일어날 수가 있고, 임대인의 반환 능력을 뛰어넘는 양의 대출이 임차인에게 이뤄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감정평가사는 고객 요구에 따라 감정가를 높이는 ‘업 감정’을 해 도덕적 해이가 나타났다고 한다.
얇은 부동산 시장은 가격 정확성과 변동성, 시장 조작 가능성과 같은 가격 발견 문제와 평가자의 도덕적 해이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과세 형평성과 시장 효율성, 투명성을 저해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부동산 시장에는 특히 외부의 제도 규율과 감시가 필요하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