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위로 끝낼 순 없어…질주는 계속된다

제주 | 김세훈 기자

남자 육상 한국 신기록 11번 갈아치운

스프린터 김국영의 ‘마지막 승부’

정상 재탈환을 위해 제주에서 맹훈련을 하고 있는 김국영이 훈련 중 트랙에 누워 잠시 쉬고 있다. 광주광역시 육상부 제공

정상 재탈환을 위해 제주에서 맹훈련을 하고 있는 김국영이 훈련 중 트랙에 누워 잠시 쉬고 있다. 광주광역시 육상부 제공

15년 넘게 정상 찍어온 베테랑
작년 체전서 충격적인 ‘동메달’
은퇴 고민 끝 다시 도전하기로
“지는 해로서 최선을 다하면서
기록에 진심이었음을 보일 것”

3위로 끝낼 순 없어…질주는 계속된다

2024년 10월 전국체전 남자 육상 100m 결승. 한국 최고 기록 보유자 김국영(34·광주광역시청·사진)은 어안이 벙벙했다.

“3위, 그것도 예선보다 뒤진 기록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정말 못 받아들이겠더라.”

지난 주말 제주에서 만난 김국영은 허공만 바라보며 한마디 한마디 말을 신중하게 이어갔다. 3개월이 지났지만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은 순간을 힘겹게 회고하는 표정이었다.

김국영은 “20년 이상 활동한 베테랑이 컨디션 조절도, 체력관리도 못해 겪은 수모”라며 “올해 1년 초심으로 돌아가 오직 기록만을 위한 마지막 승부를 벌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국영은 100m, 400m 계주에서 한국 신기록을 11번이나 경신했다. 100m에서는 1979년 서말구가 세운 10초34를 36년 만에 갈아치운 데 이어 그걸 다시 두 번이나 새로 썼다. 김국영의 10초07이 현재 한국 최고 기록이다. 400m 계주에서는 8번 한국 기록을 세웠고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동메달을 따냈다. 김국영은 “아시안게임 동메달 이후 안일했고 TV해설, 유튜브 등 때문에 운동에 집중하지도 못했다”며 “‘그 나이에도 전국체전 메달을 딴 게 대단하다’는 말도 전혀 위로가 안 됐다”고 회고했다.

김국영은 15년 이상 한국 단거리 간판으로 활동했다. 본격적으로 정상 위치에 오른 뒤에는 국내에서 정상 자리는 거의 내주지 않았다. 김국영은 “4, 5년에 한 번 정도는 2위에 머문 적이 있었다”면서도 “내 앞에 한 명도 아니라 두 명이 달렸고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은 경험은 너무 혼란스럽고도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당시 충격이 가시지 않은 인터뷰 도중 멍한 표정으로 허공으로 자주 눈을 돌렸다.

지금 은퇴해도 적지 않은 나이. 육상선수 출신 부인 김규나씨와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은퇴가 아닌 도전이었다. 김국영은 “두 번 다시 못할 정도로 최근에 정말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며 “은퇴라는 것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보고 해야 후회 없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국영은 지금 제주에서 전지훈련 중이다. 스스로 “띠동갑 이상 차이 나는 후배들보다 더 강하게 운동하고 있다”며 “운동 효과를 높이기 위해 모든 걸 미리미리 준비하고 운동에 저해되는 행동은 아예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국영은 “집에 돌아가서도 너무 힘들어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지낸다”며 “아내가 ‘공주님이 됐다’고 놀린다”고 전했다.

김국영은 키가 176㎝밖에 안 된다. 외국 스프린터들에 비하면 20㎝ 가까이 작다. 나이도 어느새 30대 중반이다. 김국영은 “나이, 키, 체구를 핑계로 삼으면 내 능력에 스스로 한계를 정하는 것과 같다”며 “내가 한국 기록을 10번 이상 깬 비결도 나이, 체격 등을 의식하지 않고 오직 기록 단축만을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자평했다.

김국영은 올해 가능한 한 많은 대회에 출전할 계획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뜨는 해”인 후배들과 “지는 해”로서 승부를 벌이겠다는 각오다. 김국영은 “정상을 다시 탈환한 뒤 당당하게 은퇴하면 나도 좋겠지만 후배들에게도 큰 울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국영은 “기대감 반, 불안감 반으로 후배들과의 대결을 기다리고 있다”며 “좋은 기록으로 1위에 오른 뒤 은퇴하면서 ‘기록에 진심인 진정한 스프린터였다’는 평가와 진심 어린 박수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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