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아파트 사전청약에 당첨됐지만 사업자의 사업 포기로 ‘내 집 마련’이 무산된 피해자들이 당첨자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새로운 사업자가 나타나야 하는 데다 분양가 인상은 피할 수 없어 지위유지에 따른 실익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선택권을 주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26일 경기 파주시 동패동 운정중앙공원 앞에 파주운정3지구 주상복합 3·4블록 사전청약 당첨 취소자들이 플랭카드를 들고 집회를 하고 있다. 류인하 기자
국토교통부는 이같은 내용의 ‘민간 사전청약 당첨취소자 구제 방안’을 22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사업 취소부지를 매입하는 후속 사업자는 기존 민간청약 당첨자들에게 주택을 우선 공급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을 개정할 계획이다. 사전청약 취소 사업장 7곳의 당첨자는 총 1800명인데, 이날 기준 당첨자 지위를 포기하지 않은 이들은 713명(39.6%)으로 집계됐다.
당첨자들은 기존 청약조건과 같거나 비슷한 평형에 지원해야 한다. 본청약 시점까지 주택 수, 거주기간 충족, 청약통장 보유 조건도 모두 유지해야 한다. 국토부는 다만 본청약 재개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주택 수 유지 의무는 유연하게 적용키로 했다. 사업 취소 통보를 받은 이후라면 신규 주택을 샀더라도 입주자 모집공고일 전까지 처분하기만 하면 청약 자격이 유지된다.
민간 사전청약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보유한 공공택지에 지어지는 민간 아파트의 입주자모집 시점을 착공이 아닌 토지계약 시점으로 2~3년 앞당기는 제도다. 그러나 2020~2022년 사전청약을 받은 사업장의 본청약이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상황이 이어지자, 정부는 지난해 5월 이 제도를 전면 폐지했다. 현재까지 민간 사전청약을 진행한 45곳 중 본청약을 완료한 곳은 20곳에 불과하다. 이 중 7곳은 사업을 취소했다.
공공 사전청약과 달리 민간 사전청약은 당첨 이후 다른 청약에 중복 신청할 수 없었다. 피해자들은 사전청약을 시행한 정부를 믿고 기다린 만큼, 사업자가 바뀌어도 당첨자 지위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정부는 사업 재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할 수 있다며 당첨자 지위 유지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후속사업 지연에 따른 분양가 상승이나 사업조건 변경 등을 피해자들이 받아들일지도 문제였다. 일례로 인천 영종국제도시 A16블록 사업자인 제일건설은 분양 사업을 취소하고 공공지원 민간임대로 전환해 피해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으려던 피해자들이 임대주택에 입주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떄문이다.

민간 사전청약 취소사업장
정부와 사전청약 피해자들은 지난 몇 달간 회의를 거친 끝에 접점을 찾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정부가 사업 주체인 민간 건설사의 분양가를 제한할 수는 없다”면서도 “불확실성은 감내할테니 선택권만 달라는 피해자들의 의견을 존중했다”고 말했다.
사업이 취소된 경기 화성 동탄2 C28블록, 인천 영종하늘도시 A41블록, 경기 파주운정3지구 3·4블록 등 4곳은 올해 중 토지 매각 공고를 실시해 새로운 민간 사업자를 찾을 예정이다. 인천 가정2지구 B2블록은 LH가 직접 공공분양 주택을 공급한다. 영종국제도시 A16블록은 공공지원 민간임대 중 일부를 분양주택으로 배정하기로 했다. 당첨자 전원이 당첨자 지위를 포기한 경북 밀양 부북지구는 이번 대책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
문제는 장기화하고 있는 부동산 경기침체와 공사비 상승이다. 국토부는 집 값이 고점을 찍었던 2021~2022년보다는 토지가격이 하락했을 가능성이 있어 토지 재매각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시장 침체에 따른 주택가격 하락 등으로 당장 사업을 이어받겠다는 시행사나 시공사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지 않다. 피해자들은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기약없이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사전청약 당첨 시점의 분양가로 내 집을 마련하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힘들다. 공공사전청약 당첨자들도 사업지연으로 본청약 시점엔 사전청약 당시 추정분양가보다 8% 이상 상승한 분양가를 받아들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유찰 시 여러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