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계엄 해제 의결 막았다면 뒷감당 할 수 없어”
정작 ‘여소야대’ 국회는 무시·비판적인 언론은 탄압
“같이 일 해본 사람들은 동의하기 쉽지 않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7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국회와 언론을 ‘초 갑’이라고 주장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12·3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을 희석하려는 의도로 분석되는데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지난 2년 반 동안 보인 행보는 정반대에 가까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21일 헌재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직접 나와 “대한민국에서 국회와 언론은 대통령보다 훨씬 강한 초 갑”이라고 말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을 막을 생각이 없었고 만약 막았다면 “정말 뒷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도 주장했다.
정작 그간 국정운영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정부를 견제하는 야당과 언론의 역할을 무시하는 행태를 반복해 수시로 논란이 일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0.73%포인트차로 승리하면서 집권 전부터 여소야대 정국에서 협치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조언을 받았다. 취임 일주일 만에 국회 추가경정예산 시정연설에서 “의회주의자”라고 밝힌 데도 이런 조언이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후 국정운영 과정에서는 야당과 ‘협치’에 기반한 관계 설정을 하지 않았다.
야당에 대한 윤 대통령의 기본 인식은 2022년 9월 미국 순방 중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사태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당시 발언이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해주고 날리면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주장했다. 비속어를 동원해 지칭한 대상이 미국 의회가 아니라 한국 야당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따르더라도 야당 비하이자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부정하는 발언이 되지만, 대통령실은 국회에 이 발언과 관련한 유감을 표명하지 않았다.
초유의 국회 무시 기록은 계속 쌓였다. 윤석열 정부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총 37개로, 12년간 집권한 이승만 전 대통령(45개)을 바싹 좇고 있다. 윤 대통령은 총 25개 법안에 거부권을 썼고 직무가 정지된 이후 약 한 달 동안 한덕수 권한대행과 최상목 권한대행이 각각 6개의 법안을 국회로 되돌려보냈다. 제1야당 대표와의 회담을 거부하다가 22대 총선 참패 후에야 한 차례 회담으로 만났다.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 개원식에 불참했고, 이례적으로 국회 시정연설에도 나서지 않았다. 급기야 윤 대통령은 야당 활동을 “국가비상사태”로 규정해 비상계엄에 나서면서 야당이 다수 의석을 점한 총선이 “부정선거”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언론 관계에서도 언론에 강경 일변도로 대응을 이어가 여야를 막론하고 문제가 제기됐다. 언론이 “초 갑”의 지위에 있다면 가능하지 않은 초유의 일들이 반복됐다. ‘바이든-날리면’ 사태 당시에는 MBC를 고발하고 “(보도가) 국익에 반한다”면서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배제했다. 용산 대통령실 이전의 근거 중 하나로 든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은 초반 시행 후 중단했다. 지난해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질문한 기자를 향해 대통령실 참모가 “무례하다”고 한 것도 같은 인식을 드러낸다.
방송 장악을 위한 인선도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 초대 방송통신위원장인 이동관 전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언론계 사찰 등 언론 탄압에 앞장선 인물이고 김홍일 전 위원장은 현재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대리인단을 맡고 있다. 이진숙 위원장은 내정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방송이 흉기라고 불린다”며 언론 장악 의도를 공공연하게 알렸다. 비상계엄 사태에서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MBC 등 비판적인 언론사의 단전과 단수를 지시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대통령실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복수의 여권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국회와 언론이 “초 갑”이라는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대통령과 같이 일을 해본 사람들은 그 말에 동의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관계자는 “대통령은 처음부터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컸고 그 기반은 자기 확신”이라며 “언론이나 참모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될 만큼의 확신을 유튜브가 준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처음에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려는 참모들이 많았지만 대통령의 반응을 직접 보거나 전해 듣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입을 닫게 되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