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10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미국이 파리기후변화협정과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다시 탈퇴하자 세계의 이목이 중국으로 쏠린다. 중국에는 글로벌 기후 리더가 될 기회가 주어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보건 영역에서는 미국의 공백을 감당하기는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1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의 기후협정 탈퇴를 우려한다”며 “중국은 각 나라들과 인류 운명공동체 이념을 고수하고, 기후 변화라는 도전에 적극 대응하고, 글로벌 녹색 저탄소 전환 과정을 공동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궈 대변인은 미국의 WHO 탈퇴 선언과 관련해서도 “WHO 기능은 오로지 강화돼야 하지 약화되선 안 된다”며 “중국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WHO의 의무 수행을 지원하고, 국제 공중보건 협력을 심화하고, 글로벌 보건관리를 강화하고, 인류보건공동체 구축을 추진할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취임식 뒤 파리협정과 WHO에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공식 탈퇴까지는 약 1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시절인 2017년에도 파리협정에서 탈퇴하고, 2020년에는 WHO 탈퇴에도 서명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은 파리협정에 복귀하고 WHO 탈퇴 절차도 중단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중국은 세계적 과제에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며, WHO 참여 중단을 선언하고 획기적인 기후 협정에서도 두 번째로 탈퇴한 미국과 대조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협정 탈퇴는 예견된 일이었기 때문에 기후 문제와 관련해 세계는 일찌감치 중국을 주목했다. 역사학자인 애덤 투즈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세계 환경문제에 관한 한 미국은 회복할 수 없도록 분열돼 있다”며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뿐”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기후 문제에서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전 세계 배출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세계 1위 탄소배출국이면서,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인 재생에너지 정책을 펼치고 있다. 2030년까지는 탄소 배출 정점을 찍고, 2060년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 태양광 패널의 80%, 풍력 터빈의 70%를 생산하며, 전기차 세계 시장점유율은 60%에 달한다. 중국의 막대한 생산력은 과잉생산 논란이 따르지만, 신재생 에너지 비용을 대폭 낮춰 기후변화 목표 달성 압박을 받는 개발도상국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받는다.
리슈오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의 중국기후허브 소장은 AFP통신에 “녹색 기술을 발전시키고 배치하는 데 있어서 중국의 성과가 구원의 은총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방은 지금까지 중국이 더 급진적인 탄소 감축정책을 내놓지 않는다고 비판해 왔다.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로 비판이 무색해졌다. 어느 나라에서나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 이해관계자의 저항이 에너지 전환의 걸림돌로 여겨지는데, 중국은 막대한 신재생에너지 ‘우군’을 구축한 데다 화석연료 산업 고위직을 대상으로 한 ‘반부패숙청’으로 이마저도 상당 앞서나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알렉스 왕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LA) 교수는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는 중요한 시기에 중국이 기후 거버넌스에서 혁신하고 선도할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게 해 준다”고 말했다.
공중보건 분야에서는 중국이 미국의 지위를 대체하기 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2023년 WHO 재정의 20%가량이 미국 정부에서 나왔다. 중국의 예산 기여는 2024~2025년 기준 0.35%에 불과하다. 이는 이탈리아보다도 적은 수치라고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적했다.
팡중잉 싱가포르 ISEAS-유소프 이샤크 연구소 객원수석연구원은 “중국은 WHO에 대한 기여금을 늘릴 수 있지만, 미국이 남긴 공백을 메울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며 중국 경제의 어려움으로 국제기구 기여가 제한될 수 있다고 SCMP에 말했다. 그는 WHO는 당분간 WHO 재정의 두 번째 큰 손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등 미국 민간의 힘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