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부살이’ 방송에서 지상파 최장수 토크쇼로···‘라스’의 19년

최민지 기자
MBC <라디오 스타>의 김명엽 PD(맨 왼쪽)와 네 MC(김국진, 김구라, 유세윤, 장도연) 가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MBC 제공

MBC <라디오 스타>의 김명엽 PD(맨 왼쪽)와 네 MC(김국진, 김구라, 유세윤, 장도연) 가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MBC 제공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MBC 예능 <라디오 스타>(이하 라스)보다 이 말이 잘 어울리는 TV 프로그램이 또 있을까. 방송 시간 확보에 목매는 ‘더부살이’ 프로그램에서 MBC를 넘어 지상파 전체를 대표하는 최장수 토크쇼가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라스>에 출연한 게스트만 1814명, 수요일 밤을 책임져 온 시간이 벌써 19년이다.

<라디오 스타>가 내달 5일 방송 900회를 맞는다. MC 김국진·김구라·유세윤·장도연과 김명엽 PD는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 MBC에서 900회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열고 지난 19년의 시간을 돌아봤다.

1회부터 출연한 원년 멤버 김국진은 ‘900’이라는 숫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처음 시작할 때는 분명 ‘그냥’ 시작했는데 900회가 됐다”며 “함께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놀랍고 기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라스>의 시작은 2007년 5월, 지금은 종영한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라스>는 강호동이 이끄는 토크쇼 <무릎팍도사> 뒤에 따라붙는 작은 코너였다. 어디까지나 메인은 <무릎팍도사>였기에 <라스>의 방송 분량은 오락가락했다. 보통은 10~15분, 짧을 때는 5분 만에 끝나버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라스>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클로징 멘트 “다음주에 만나요 제발~”은 이렇게 탄생했다. 19년이 지나 살아남은 것은 <라스> 뿐이다. 비슷한 시기 국민 MC 유재석, 강호동이 각각 이끌던 지상파 토크쇼 KBS <해피투게더>, SBS <강심장>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구라는 <라스>의 끈질긴 생명력에 대해 나름의 분석을 내놨다. 그는 “중량감 있는 MC들이 하는 정통 토크쇼는 아무래도 여러 가지 핸디캡이 있다고 본다. 그에 비하면 리얼리티 기반의 <라스>는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성질의 프로그램”이라며 “가볍고 작게 굴린 눈덩이가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구라의 설명대로 <라스>의 가장 큰 특징은 거칠지만 가벼운 진행이다. 때론 무질서하다고까지 여겨지는 진행 과정에서 예측불허의 재미가 튀어나온다. 김국진이 “처음에 <라스>를 시작했을 때는 너무 공격적이어서 당황스러웠고 안절부절 못 했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무질서 속 질서’야말로 <라스>만의 매력이 됐다고 그는 덧붙였다.

“장도연씨의 깊은 생각 속에 숨어있는 장난기, 유세윤씨의 장난기 안에 스민 속 깊은 면, 가벼움의 극치지만 이야기를 끌어내는 힘을 가진 김구라씨와 저의 따뜻함. 이 모든 것들이 시대에 맞게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900회를 이끈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MBC <라디오 스타>의 네 MC와 제작진. MBC 제공

MBC <라디오 스타>의 네 MC와 제작진. MBC 제공

<라스>가 안방극장 대표 토크쇼로 자리잡은 19년 동안 방송 환경은 크게 변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대세가 됐고, 작품 홍보 활동에 나선 톱스타들이 향하는 곳은 지상파 예능이 아닌 유튜브 웹예능이다. 각종 제약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웹예능은 일명 ‘술방’을 통해 스타들의 진솔한 모습을 끌어내며 인기를 끌고 있다.

김명엽 PD는 “<라스>에는 작품 홍보 뿐만 아니라 우리 프로그램을 사랑해서 5,6번씩 나오는 분들이 많다. 종합 과자선물세트처럼 한 연령대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연령대가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며 “지상파 예능이 해야 하는, 할 수 있는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1991년생으로, 고등학생 때부터 <라스>를 즐겨본 시청자였다는 그는 MBC 예능 메인 PD 중 가장 어리다.

<라스>의 MC들 역시 환경 변화와 상관 없이 여전히 <라스>만의 몫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김구라는 “2007~2008년에도 이정재, 김혜수 같은 톱스타들이 <라스>에 나오진 않았다. 한때는 뉴스 프로그램에 나가는 게 홍보 트렌드이기도 했다”며 “저희가 자리를 꾸준히 지킨다면 언젠가 그 분들이 <라스>에도 나올 거라 본다. <라스>만큼 (출연자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하는 방송도 없다”고 말했다.

“유튜브에서 잘 되는 분들은 결국 <라스에 나옵니다. 이 점이 <라스>의 매력 아닐까요?”(김국진)

오는 2월5일 방송될 900회는 어떻게 꾸려질까. 제작진은 이날 특집 방송을 위해 5개월 가까운 시간을 쏟아부었다. 김 PD는 “‘구관이 명관’이라는 주제로 게스트를 모셨다. 녹화도 너무 재미있게 돼서 2회 분이 나왔다. 감히 ‘레전드’ 편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고 기대를 높였다.

잠자코 듣고 있던 김구라가 시니컬한 얼굴로 덧붙였다. “900회 특집이라고 대단한 분들이 나온 건 아닙니다. 큰 기대 안 하셔도 좋습니다. 근데 되게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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