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떨떠름… 마리앤 버드 성공회 워싱턴 교구 주교(가운데)가 21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가기도회’에 참석하고 있다. 종파를 초월해 열리는 이 기도회는 1933년 시작된 전통적인 미국 대통령 취임 행사다. AP연합뉴스
미 정부, 불법 체류 단속 시작
체포자 본국·제3국으로 추방
“이민 관련 체포·구금은 금지”
지자체 곳곳선 ‘보호’ 움직임
“마지막으로 간청드립니다, 대통령님. 주님의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두려움에 떠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민주당과 공화당, 무소속 가정에는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자녀가 있고 일부는 목숨을 잃을까 무서워합니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의 워싱턴국립대성당에서 열린 국가기도회에서 마리앤 버드 성공회 워싱턴 교구 주교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바라보며 이같이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뚱한 표정으로 설교를 듣다가 불쾌하다는 듯 시선을 돌리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도회 참석을 끝으로 공식 취임 행사를 마무리한 취임 둘째 날, 버드 주교가 언급한 이들은 하루아침에 달라진 세상을 맞았다. 소수자를 보호하는 다양성 정책을 폐기하고 이민자를 내모는 행정명령이 무더기로 승인되면서 미국 사회 분위기가 급변했다.
불법 체류 이민자에 대한 단속부터 바로 시작됐다. 트럼프 정부의 ‘국경 차르’ 톰 호먼은 이날 CNN 인터뷰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전국에서 불법 체류자 단속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호먼은 범죄 경력이 있는 불법 체류자를 중심으로 단속할 계획이지만, 범죄 경력이 없더라도 체포할 수 있다고 했다. 체포한 불법 체류자는 가둔 뒤 본국이나 제3국으로 추방하겠다고 덧붙였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이민 정책과 대량 추방의 물결에 대응하기 위한 작업이 전국 곳곳에서 시작됐다고 전했다. 정부의 불법 체류자 단속에 협조하지 않거나 협조 자체를 금지하는 지방자치단체를 미국에선 ‘피난처 도시’라고 부르는데, 이들 도시는 주로 민주당 소속 단체장이 이끌고 있다. 대표적 ‘피난처 도시’인 로스앤젤레스를 둔 캘리포니아주는 이민자를 보호하기 위한 지침 정비에 나섰다.
롭 본타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은 취임식에 앞서 “(캘리포니아에선) 이민과 관련한 법 집행 목적으로 사람을 조사, 신문, 구금, 체포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밖에도 여권에서 성별을 제3의 성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도 사라졌다. 미 국무부는 그동안 여권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웹사이트에서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다른 성별 정체성을 뜻하는 ‘X’를 택할 수 있게 했지만 이날 오전 해당 칸을 없애버렸다.
연방정부 내에서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을 담당하는 모든 공무원은 이날부터 해고 절차를 밟게 됐다. 이날 바로 휴가 명령을 하고 다음날 오후 5시까지 해고하라는 지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소외된 공동체에서 수십년간 이어져온 차별과 무시를 몰아내는 일은 국가의 미래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 바로 세우는 것이라는 바이든 전 대통령의 태도를 뒤집는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