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유족 13명 낸 손배소
‘원고 승소’ 1심 판결 뒤집혀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관해 ‘자발적 매춘’ 등으로 표현해 재판에 넘겨진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사진)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2심 판결이 나왔다. 책에서 쓴 표현을 ‘사실 적시’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서울고법 민사12-1부(재판장 장석조)는 22일 이옥선씨(96)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13명이 박 교수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9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을 뒤집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1심 선고로부터 9년 만에 나왔다.
이들은 2013년 8월 출간된 <제국의 위안부>에서 “저자 박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자발적 매춘’ 등으로 표현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1인당 3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이듬해 6월 제기했다. 1심은 박 교수가 ‘위안부’ 피해자에게 1000만원씩 총 9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박 교수가 저서에 적은 표현들은 사실 적시에 해당하지 않고, 학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비춰볼 때 ‘의견 표명’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박 교수의 표현에 문제가 있더라도 이는 학계나 토론 과정을 통해 검증할 영역이라고 봤다. 법적 판단에 기대는 것이 자칫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도서는 학문적 표현물로 보이고, 학문 분야에서 통상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는 부정행위를 한 것이 아니다”라며 “불법행위 책임을 쉽게 인정한다면 이는 자유롭게 견해를 표명할 자유를 지나치게 위축시킬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판단은 앞서 같은 사건으로 제기된 명예훼손 소송에서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선고 영향을 받았다. 2심 재판부는 이날 “대법원은 공소사실 해당 표현들이 사실 적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아 무죄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2023년 10월 대법원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교수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지난해 4월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 재판부는 대법원 선고 취지를 인정하고 박 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