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단 주선하겠다던 B씨의 제안에
기존 팀과 계약 안 한 지도자·선수
졸지에 ‘실직자’…“선수 보호해야”

레슬링 AI 이미지 | CHATGPT 4o
대기업 레슬링팀 창단 및 입단을 빌미로 벌어진 사기극이 한 지도자의 폭로로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대기업 자회사가 신생팀을 창단한다는 말에 사표를 제출하거나 재계약을 포기한 지도자와 선수들이 15명 안팎에 이른다.
박진성 전 창원시청 코치는 지난 2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한 대기업의 레슬링 창단 사기극에 피해를 입은 당사자”라면서 “10년 이상 헌신했던 직장을 사임하고 부푼 꿈에 코치로 임명받았다고 통보받았다. 하지만 잔인한 사기였다”고 밝혔다.
사기극은 지난해 7월 시작됐다. 지방 레슬링협회 고위 관계자 B씨는 모 대회에서 A사의 레슬링팀 창단 소식을 알리면서 감독과 코치, 선수 12명 등을 스카우트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B씨는 이들 일부에게서 입단을 전제로 한 로비 비용 등으로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씩을 받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코치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11월까지 서류 전형이 진행된 뒤 12월 중순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며 “면접도 없는 합격 소식이 의아했지만 ‘특별 채용’이라는 설명에 수긍했다”고 말했다.
박 전 코치는 물론 다른 몇몇 지도자들도 소속팀에 사표를 제출했다. 선수 12명 역시 기존 소속팀과 재계약을 포기했다. 그런데 서울 본사에서 진행된다던 신생팀과의 계약은 세 차례(12월27일·1월4일·14일)에 걸쳐 연기됐다. B씨는 ‘비상계엄’ 사태로 회사 업무 처리가 늦춰지는 것이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박 전 코치를 포함한 일부 피해자들이 A사에 직접 질의한 결과 “창단할 예정도, 계획도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A사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하며 “레슬링 창단 여부를 확인하는 요청이 여러 번 있었다. 답변은 동일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창단팀 입단을 주선한 B씨가 지난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 전 코치는 “설 연휴가 지나면 택배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당장 레슬링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가족들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팀들이 이미 선수 수급을 마친 상황이라 선수들은 대부분 실직자가 됐다. 박 전 코치는 “나 같은 코치들은 어쩔 수 없지만, 선수들이 살길을 찾아주셨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대한레슬링협회 관계자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사기와 관련해) 구체적인 부분이 확인되면 공식적으로 알릴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