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경덕왕 24년, 왕이 고승인 충담(忠談)에게 ‘이안민가(理安民歌·백성을 다스려 편안하게 할 노래)’를 짓도록 했다. 그러자 충담은 향가 ‘안민가(安民歌·백성이 편안할 노래)’를 지어 바쳤다. 안민가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가 태평할 것입니다.” 고등학교 국어 수업 시간에 배우는 이 구절은 각자가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 나라가 태평하다는 교훈을 준다.
지금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혼란스러운 정국에 우리 위정자들이 안민가를 참고하면 어떨까. 국가가 위기일수록 각자 위치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임을 1000년 전 향가가 알려주고 있다. 당정 구성원이나 국민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본분을 다해야 하며, 이는 교육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에게는 ‘교육’이 없다. 보이지 않는다. 물론 표면적으로 교육을 다룰지라도 진정한 교육이 안 보인다는 얘기다.
지난주 국회에서 ‘AIDT(Artificial Intelligence Digital Textbook·AI 디지털 교과서) 검증 청문회’가 열렸다. 이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진영 논리에 따라 ‘AIDT’ ‘AI 디지털 교과서’ ‘AI 코스웨어(코스와 소프트웨어의 합성어)’ 등으로 다르게 불렀다. 비단 AI 디지털 교과서 문제만이 아니다. 요즘 보면 교육이 본질보다는 정치 논리에 더 좌우되는 것 같다.
2025년 1월 현재 해결해야 할 교육 현안은 한둘이 아니다. AI 디지털 교과서 지위 문제, 고교 무상교육과 관련한 지방교육재정 교부금법 개정안에 대한 정부 입장,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동결 혹은 감축 문제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대학의 등록금 인상 요구와 지방 국립대 등록금 동결, 의·정 갈등 속 전공의 수업 복귀 문제, 자사고 지정 취소 권한을 둘러싼 교육감과 교육부 간 갈등, 각종 돌봄교육의 문제 등도 빠르게 논의돼야 한다. 여기에 대통령 소속 국가교육위원회의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시안도 마련해야 한다. 국가교육위원회에 최근 제2기 중장기 국가교육발전 전문위원들이 임명됐지만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원래 국가교육위원회는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 시안을 1월까지 마련하고 1~2월 공청회를 거쳐 3월에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었지만 이마저 불투명하다.
나는 지난해 말 교육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수능 이원화 및 내신 외부 평가제, 절대평가와 논·서술형 도입’ 방안에 주목한다. 국가교육발전계획의 유·초·중등교육 분야 중장기 주요 의제(안)에 포함된 것으로 보도돼 많은 학부모가 불안에 떨고 있다. 국가교육발전계획은 2026년부터 2035년까지 10년간의 교육 정책 방향을 정하는 것이어서 초미의 관심사인데 매번 비공개로 논의돼서 안타깝다. 이렇게 되면 사교육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국가교육위원회 논의안에 언급될 수능 이원화 및 내신 외부 평가제가 입시 현장, 특히 사교육에 미칠 영향은 ‘메가톤급’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처럼 교육 현안이 쌓였음에도 현재 정치 상황과 맞물려 교육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훗날 안 좋은 결과가 걷잡을 수 없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교육부가 주관을 갖고 교육 정책을 뚝심 있게 시행해야 한다. 최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의대 정원 조정을 두고 ‘용산은 간섭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 발언은 진작에 나왔어야 했다. AI 디지털 교과서 문제도 마찬가지다. 청문회에 나와서 국회의원 질의에 동어반복 답변만 하기보다는 확실한 근거 자료를 기반으로 방법과 시기 등 실질적인 협의를 진행해야 했다.
비단 의대 정원 문제뿐만 아니라 당면한 모든 교육 현안에 ‘정치권은 간섭하지 말라’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교육부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정치 상황과 관련없이 실종된 교육을 다시 찾아와 본궤도에 올려놓으려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1000년 전 충담의 지혜가 지금의 우리나라 교육 당국에 닿았으면 한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