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이 충격을 덮는, 각종 ‘초유’ 사태의 폭풍 속을 지나면서, 국민들이 가장 자주 마주하는 감정은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아닐까 싶다.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지만, 집단적 수치심을 안긴 충격적인 장면 몇 가지만 추린다.
“84만5280분 귀한 시간들 오로지 국민만 생각한 당신” “새로운 대한민국 위해서 하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대통령이 태어나신 뜻깊은 오늘을 우리 모두가 축하해”. 2023년 12월18일 대통령실 강당에서 ‘대통령경호처 창설 60주년 기념행사’를 빙자해 열린 윤석열 대통령(이하 호칭 생략)의 생일잔치에 울려퍼진 축하곡이다. 북한에서나 있을 법한 ‘윤비어천가’에 희희낙락했을 윤석열의 낯두꺼움에 국민들은 부끄럽다.
“김용현 국방장관이 국회해산권이 존재했던 예전 군사정권 때의 계엄 예문을 그대로 필사했다. 나는 (이러한) 문구 잘못을 부주의로 간과해 바로잡지 못했다.” 윤석열 변호인단은 지난 14일 김 전 장관이 계엄 포고령을 잘못 베껴 위헌적인 내용이 포함됐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한마디로 “쟤가 그랬다”며 책임 떠넘기기를 한 것이다. 지난 21일 헌재에 출석한 윤석열은 포고령은 부하가 쓴 것을 형식적으로 공포한 것으로, 자기는 실행할 생각이 없었다는 설명까지 더했다. 포고령의 위헌성을 피하기 위해,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계엄을 마치 별것 아닌 것처럼, 장난처럼 얘기했다. 찌질함, 무책임의 극치다. 국민들은 부끄럽다.
윤석열이 경호처 부장단과의 오찬에서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 때) 총을 쏠 수는 없냐”고 묻자, 김성훈 경호처 차장이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는 진술도 있다. 이광우 경호본부장은 기관단총 2정과 실탄 80발을 대통령 관저 안으로 옮겨두라고 했고, 관저 근무 경호관들에게 “제2정문이 뚫릴 경우 기관단총을 들고 뛰어나가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윤석열은 부하들을 범죄로 내몰아 인생을 망치고, 인간방패로 이용하려 했다. 그 비정함이 국민들은 부끄럽다.
윤석열은 대한민국을 무법천지로 몰고 간 1·19 서울서부지법 폭동을 조장했다. 체포 직전 한남동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끝까지 싸우겠다” “뜨거운 애국심에 감사한다”고 했고, 체포 직후엔 “나라 법이 무너졌다”고 선동했다. 폭동에 비판이 일자, “물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국가적으로는 물론, 개인에게도 큰 상처가 될 수 있다”고 평화적인 방법의 의사표현을 당부했지만, “새벽까지 자리를 지킨 많은 국민들의 억울하고 분노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며 뒤끝을 남겼다. 그는 대한민국 전체를 호명하지 않는다. 한 줌 지지자들에 고무돼 골목대장처럼 선동을 서슴지 않고, 지지자들 뒤에 숨으려는 그의 모습에 국민들은 부끄럽다.
호기롭게 제기했던 부정선거론은 갈수록 말이 바뀌며 쪼그라든다. 체포 당시 윤석열은 부정선거의 증거가 너무나 많다더니, 변호인단은 헌재 2차 변론에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계엄을 선포한 것이라 했다. 3차 변론에서 윤석열은 “2023년 10월 국정원이 선거관리위원회 전산장비의 극히 일부를 점검한 결과 문제가 많이 있었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면서도 “부정선거 자체를 색출하라는 게 아니라 선관위의 전산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스크리닝(점검)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했던 것”이라며 “팩트를 확인하자는 차원”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부정선거 의혹, 시스템 점검이 비상계엄의 이유가 될 수 있는가. 의혹이 있다면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해 법적인 틀에서 규명하려 노력했어야 한다. 22일엔 현 정부 들어 중앙선관위에 대한 압수수색이 30차례 진행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선관위는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비상계엄의 명분을 쌓았던 거짓말이 또 확인된 셈이다. 상식적인 시민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윤석열의 허술한 논리와 아무말대잔치, 무개념이 부끄럽다.
계엄 폭탄 때문에 밝아야 할 설 명절이 참으로 암울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지켜보는 국민들의 부끄러움의 목록도 늘고 있다. 지난해 설 윤석열은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노래를 부르며 “언제나 국민 곁에 함께하는 따뜻한 정부가 되겠다”는 동영상을 올렸다. 내란 사태가 몰고 온 뜻밖의 좋은 점은 이 같은 가식적인 명절 인사를 안 받아도 된다는 점, 그가 말하는 국민이 누구인지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머지않아 이 모든 부끄러움들과 결별할 수 있다는 역설적 희망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송현숙 후마니타스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