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국민 저항권’?

김나연·윤지원 기자

불복 절차 있는데 폭력 행사…저항권은 ‘최후의 수단’에만 해당

서울서부지방법원 난입·폭력 혐의를 받는 56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22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 외벽에 폭력 사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준헌 기자

서울서부지방법원 난입·폭력 혐의를 받는 56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22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 외벽에 폭력 사태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준헌 기자

‘서부지법 난동’ 극우세력
“정당한 권리” 주장하지만
1997년 헌재 결정례 보면
“합법적 수단도 안 통할 때
저항하는 권리가 저항권”

서울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를 주도한 윤석열 대통령 지지 세력은 폭동에 나선 이유로 ‘국민 저항권’을 내세웠다. 이들은 “부당한 공권력에 대해 불가피하게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헌법상의 ‘저항권’ 행사로 인정될 수 없고,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22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저항권이란 공권력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칠 경우 국민이 이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헌법에 명문화된 기본권은 아니지만 헌법은 전문에서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해 간접적으로 저항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저항권이란 단어가 최근 윤 대통령 지지 세력의 폭동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등장했다. 이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사법권에 불복하는 것을 “정당한 저항권 행사”라고 주장한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지난 19일 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 당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국민 저항권이 시작됐기 때문에 윤 대통령도 구치소에서 우리가 데리고 나올 수 있다”며 “헌법 위에 저항권이 있다”고 발언했다. 국민의힘 지지 커뮤니티에는 “저항권을 발동해 사법부를 죽여야 한다”거나 “구속영장 집행을 저지하는 것은 곧 저항권 발동”이라는 글들이 올라왔다.

그러나 헌재 결정례에 비춰 이번 사태는 저항권으로 인정될 수 없다고 보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 시각이다. 법원 판단에 대해 별도의 불복 절차를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 목적으로 폭력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저항권을 공권력으로부터 구제받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보면서 그 구성요건을 면밀히 따져왔다. 저항권이 쉽게 인정되면 폭력을 조건 없이 합리화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997년 위헌제청 사건에서 헌재는 저항권을 “다른 합법적인 구제수단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 저항하는 권리라고 했다.

이에 비춰보면 윤 대통령 구속에 반발한 서부지법 사태는 ‘최후의 수단’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맞다는 분석이 많다. 구속적부심이나 보석을 청구하는 등 구속에 합법적으로 불복할 수 있는 절차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에 앞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변론하는 등 구제 기회를 얻기도 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사가 발부한 구속영장에 대해 다른 법적 절차로 구제받을 수 있다면 저항권 행사 상황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헌재는 2014년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심판 사건에서 저항권의 구성요건을 더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먼저 공권력이 단순한 헌법 위반을 넘어 ‘민주적 질서’를 파괴하려 할 때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했다. 4·19혁명, 3·1운동, 부마민주항쟁처럼 독재 세력에 맞선 항거들이 정당한 저항권 사례로 인정되는 이유다.

반면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는 법원의 적법한 판단이었을 뿐, 헌법 또는 민주적 질서가 침해된 경우로 볼 수 없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저항권은 독재에 의해 사법제도들이 기능하지 않을 때 부여되는 것인데, 법원의 자율적 판단에 대한 불복을 저항권이라고 하는 것은 요건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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