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주도 기업 경쟁력 강화 강조
정책 상징 ‘기본사회’는 후순위로
부진한 여론조사엔 “겸허히 수용”
‘현실적 실용주의’ 대선 행보 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국회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며 현실적 실용주의를 통한 ‘공정 성장’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지금은 나누는 문제보다 만들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며 자신의 정책 상징인 ‘기본 사회’를 후순위로 미뤘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장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 아닌가”라며 “탈이념·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가 위기 극복과 성장 발전의 동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전 세계로 확대되는 정치 극단화도, 우리 사회의 심각한 양극화도 결국 경제 양극화가 원인”이라며 “성장의 기회도, 결과도 함께 나누는 공정 성장이야말로 양극화 완화와 지속성장의 길”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크게 4가지 성장 방안을 제시했다. 가장 먼저 기업 경쟁력 강화를 강조했다. 이 대표는 “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에서 민간 주도 정부 지원의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며 “민간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존중하고 국제 경쟁 최전선에서 분투하는 기업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자본시장 선진화, 인공지능(AI) 등 신성장 동력 창출, 새로운 통상 환경 적응 등을 과제로 제안했다.
이 대표는 기자회견 상당 부분을 성장과 안정을 강조하는 데 할애했다.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시절부터 핵심 비전으로 제시했던 ‘기본사회’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이 대표는 관련 질문에 “세상에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고, 정책은 어떤 것을 더 우선할지 선택의 문제”라고 밝혔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도가 민주당을 앞서는 결과가 나오는 데 대해선 “국민의 뜻으로 겸허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우리가 항의하고 저항하는 소위 약자 입장이었다면 지금은 강자가 제거된 일종의 갑의 위치에 있다고 보고 국민께서 민주당에 대한 요구 수준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더 낮은 자세로 책임 있게 우리 역할을 재정립하고, 정책 방향도 심각하게 재정립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선출된 책임자의 가장 큰 역할은 통합”이라며 집권하게 되더라도 정치 보복은 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는 “일부에서 ‘내란 세력을 사면할 것이냐’는 이야기를 벌써 하던데, 명백한 위법에 대한 책임을 묻는 건 당연히 필요하다”면서도 “정치 보복은 있어서는 안 되고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비이재명(비명)계를 중심으로 이 대표 일극 체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데 대해선 “정당은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일극 체제라고 할지 아니면 당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할지는 보는 입장에 따라서 다를 것”이라고 반박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겨냥해선 날 선 메시지를 내놨다. 이 대표는 “본인에게 유리한 권한을 함부로 행사해 거부권을 남발하는 등 철저하게 내란 소요 세력을 옹호하고 있다”며 “부적절한 국정 운영을 하고 있지만 최대한 인내하고 기다린다”고 말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심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는 이 법 일부 조항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시사했다. 이 대표는 “변호인단이 검토하는 단계인데 저는 그 (검토) 결과를 존중한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여당은 ‘분장술’을 언급하며 혹평했다.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정치투쟁·이념투쟁에 골몰했던 이 대표가 그간 기조와 정반대의 말씀을 하는 점이 의아하다”면서 “(기본사회 시리즈 폐기 선언 등) 진정성 있는 행동이 없다면 오늘 회견은 ‘정치적 변신이자 분장술’에 불과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