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다 가블러·지젤·말러 교향곡 2번···같은 작품 다른 무대, 어디서 볼까

백승찬 선임기자

연말·연초 발표된 국내 주요 공립·민간 공연장의 2025년 라인업을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경쟁하는 두 단체에서 우연히도 같은 작품을 선보이는 경우다. 관객은 어느 작품을 택할지 고민하며 예매 시작을 기다린다.

희생자인가 악당인가 ‘헤다 가블러’

<헤다 가블러>는 근대 연극의 대가 헨리크 입센이 1890년 발표한 희곡이다. 남편의 성을 거부하고, 아버지와 자신의 성인 ‘가블러’로 살아가는 여성 헤다가 주인공이다. 사회적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의 심리를 그린다. 헤다는 희생자, 악당, 페미니스트 등 어떤 역할로도 해석될 수 있다. 19세기 작품으로는 보기 드문 ‘여성 원톱’ 희곡이며, 강렬한 비극성을 갖고 있어 ‘여성 햄릿’으로도 불린다. 잉그리드 버그먼, 이자벨 위페르, 제인 폰다, 케이트 블란쳇 등 쟁쟁한 배우들이 연극, 영화, 드라마에서 헤다 역을 연기했다.

국립극단은 5월 박정희 예술감독의 연출로 이 작품을 선보인다. 세계 초연 120년 만에 한국 프로 연극 무대에서 초연한 2012년 명동예술극장 공연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초연의 호평으로 각종 연기상을 받은 이혜영이 다시 헤다로 돌아왔다. LG아트센터 서울 역시 5월 전인철의 연출로 이 작품을 공연한다. 지난해 전도연이 출연해 화제를 모은 <벚꽃동산>의 여세를 몰아, 올해도 유명 배우 섭외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영애가 1993년 <짜장면> 이후 32년 만의 연극 출연을 놓고 협의 중이다. 국립극단 관계자는 “<헤다 가블러>는 프로, 아마추어 연극인 모두 한 번쯤은 무대화할 것을 꿈꾸는 작품이지만, 같은 시기에 두 군데서 공연할 줄은 예상 못했다”며 “관객으로선 두 작품을 비교해 볼 수 있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낭만 발레 대표작 ‘지젤’

국립발레단의 <지젤>. 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의 <지젤>. 국립발레단 제공

유니버설발레단의 <지젤>. ⓒKyoungjin Kim·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유니버설발레단의 <지젤>. ⓒKyoungjin Kim·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지젤>은 아돌프 아당의 음악을 바탕으로 1841년 프랑스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한 낭만 발레의 대표작이다. 아름다운 시골 처녀 지젤과 귀족 알브레히트의 비극적 사랑을 중심으로 한다. 사랑의 배신에 미쳐 죽은 지젤이 윌리라는 요정이 돼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1막에서 광란에 빠진 지젤의 ‘매드 신’, 2막에서 윌리들이 선보이는 발레 블랑(백색 발레)이 특히 유명하다. 지젤 역을 맡기 위해선 극적인 감정 연기와 원숙한 기교가 모두 필요해, 여성 무용수들에겐 언젠가 도전해야 할 꿈의 역할로도 꼽힌다.

지난해 대작 <라바야데르>를 나란히 선보였던 국내 양대 발레단체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은 올해 <지젤>을 잇달아 공연한다. 4년 만의 유니버설발레단 작품은 4월, 2년 만의 국립발레단 작품은 11월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볼 수 있다. 국립발레단 관계자는 “발레에는 클래식 레퍼토리가 많지 않아 여러 단체가 같은 작품을 공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유니버설발레단 관계자는 “문훈숙 단장을 대표하는 역할이 지젤이었던 만큼, 좋은 공연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라바야데르>에서 국립발레단은 박세은·김기민, 유니버설발레단은 강미선·전민철 등 스타 무용수를 캐스팅해 대결했다. <지젤>에서도 두 단체의 캐스팅에 관객의 시선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작곡에만 6년 ‘말러 교향곡 2번’

KBS교향악단 계관지휘자 정명훈. ⓒ上野隆文·KBS교향악단 제공

KBS교향악단 계관지휘자 정명훈. ⓒ上野隆文·KBS교향악단 제공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 ⓒSimon van Boxtel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 ⓒSimon van Boxtel

구스타프 말러는 교향곡 10곡 중 1895년 초연한 2번 작곡에 가장 오랜 6년을 들였다. 작곡 기간에서 알 수 있듯, 2번은 말러 교향곡 중에서도 대작으로 꼽힌다. 소프라노, 알토, 다수의 혼성 합창단이 필요하고, 5악장에선 파이프 오르간, 교회 종까지 나온다. 연주 시간은 통상 80~90분이 소요된다. 일반적으로 클래식 음악회는 인터미션을 사이에 둔 1, 2부로 구성되지만, 말러 교향곡 2번은 워낙 대작인 만큼 이 한 곡만 연주한다.

연초부터 한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두 곳에서 말러 2번을 준비했다. 먼저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 지휘로 16, 17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했다. 서울시향이 말러 2번을 연주한 것은 전임 오스모 벤스케 시절이던 2020년 이후 처음이다. 이번 공연에는 독일 출신 소프라노 하나엘리자베트 뮐러, 캐나다 출신 메조소프라노 태머라 멈퍼드가 참여했고, 베를린필하모닉 트럼펫 수석 기욤 젤 등이 객원수석으로 금관 파트를 보강했다. 멀리서 들리는 금관 소리를 재현하기 위해 연주자들이 무대 바깥에서 문을 연 채로 연주하기도 했다. 츠베덴은 5년의 재임 기간 중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녹음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번 공연 역시 녹음돼 애플 뮤직 클래시컬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KBS교향악단은 2월2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계관지휘자 정명훈의 지휘로 연주한다. 2023년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연주회에서 크리스토프 에센바흐의 지휘로 연주한 지 2년 만이다. 소프라노 황수미, 메조소프라노 이단비가 노래한다. 정명훈은 서울시향 음악감독 시절 말러 교향곡 1·2·5·9번을 녹음해 도이치그라모폰에서 선보인 만큼, 말러 해석에 애정을 가진 지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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