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국회에서 신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23일 기자회견은 실용주의와 성장을 강조하며 중도·보수층에 소구한 사실상의 대선 전략 공개로 평가된다. 대통령 탄핵 정국임에도 민주당 지지율 하락을 초래한 보수층의 진영논리와 본인에 대한 비토 여론을 ‘공정 성장’ 담론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 대표는 회견에서 자신이 힘을 실어 온 ‘기본사회’ 정책조차 언급하지 않고 성장 담론에 주로 힘을 실었다. 그는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 아닌가”, “탈이념·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가 위기 극복과 성장 발전의 동력”이라며 실용주의 노선을 명시적으로 강조했다. 진영에 구애받지 않는 실용주의를 표방하며 확장성 강화에 힘을 실은 것이다.
이 대표는 “기업이 앞장서고 국가가 뒷받침해 성장의 길을 열어야 한다”며 첨단기업에 대한 네거티브 규제 전환을 거론하기도 했다. 성장이란 실리를 위해 보수가 강조해 온 기업 규제 완화까지 포용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가 이처럼 탈이념을 강조한 것은 탄핵 정국임에도 민주당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상승하지 않고 있는 최근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강경 대응을 이어왔으나, 오히려 보수층의 결집으로 정당 지지율에서 국민의힘에 역전당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중도·보수층의 비호감이 팽배한 것도 민주당 지지율이 약세를 보이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최근 한국갤럽, 전국지표조사(NBS),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지지율 역전을 당했다. 대선후보 양자대결에서도 이 대표의 우위를 확신할 수 없는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조원씨앤아이가 시사저널 의뢰로 지난 18~19일 만 18세 이상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는 김문수 노동부 장관과의 양자대결에서 41.8% 대 46.4%로 오차범위 내에서 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민주당 내에서는 그간 움직이지 않는 중도·보수층을 공략하기 위해 민생 정책에 힘을 싣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 대표의 이날 회견도 기존 스탠스에서 ‘우클릭’된 실용주의 노선을 통해 중도·보수가 지지할만한 대권 후보의 이미지를 확보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는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도 “(대선 이후) 선출된 책임자의 가장 큰 역할은 통합”이라며 보수층을 아우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민주당이 밀리는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는 “겸허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다”며 몸을 낮췄다.
다만 기본사회 정책까지 후순위로 미룬 노선 변화를 두고 고심도 감지된다. 당내에선 성장을 우선하는 방향에 대한 이견도 나오고 있다. 이 대표는 이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악화된 민생을 거론하며 “지금은 나누는 문제보다 만들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안정이 우선적인 과제로 떠오른 만큼 성장 정책에 힘을 더 실어야 했다는 설명이다.
우클릭에 거부감을 느끼는 기존 지지층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언급들도 있었다. 이 대표는 “정치 극단화도, 심각한 양극화도 결국 경제 양극화가 원인”이라며 성장과 분배의 가치를 조합한 ‘공정 성장’이란 개념을 강조했다. “비정상적 지배 경영구조를 혁신하겠다”며 주식시장 선진화도 언급했다. 이는 민주당의 상법 개정안 추진을 거론한 것으로, 기업에 대한 ‘견제책’으로 볼 수 있다.
탄핵 정국에서 진행된 이 대표의 이날 회견은 차기 대선 출마식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신년 기자회견은 일반적으로 대통령이 먼저 진행한 뒤 야당 대표가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탄핵으로 인해 이 대표가 대통령처럼 가장 먼저 진행한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다시 대(大)한민국’이라는 플래카드와 국가적인 방향을 제시한 메시지는 이같은 분위기를 더 강화했다.
다만 이 대표는 조기 대선 준비로 비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지금은 내란 소요사태 극복에 중점을 둬야 할 시기라 대선에 대해 검토하거나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 의원은 “이 대표가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을 텐데, 매우 절제해서 하지 않았나 싶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