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이 23일 오후 서울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고려아연 제공
고려아연 주주총회에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상정한 집중투표제 도입과 이사 수 제한 안건이 모두 통과되면서 영풍·MBK파트너스(MBK) 측의 이사회 장악이 불발됐다.
최 회장 측이 상법상 ‘상호주 의결권 제한’이라는 카드로 영풍·MBK 측 지분 25.4%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하면서다. 영풍·MBK 측이 의결권 제한 무효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서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고려아연은 23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에서 열린 임시 주주총회에서 첫 번째 의안으로 상정된 집중투표제 도입정관 변경 안건을 출석 의결권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 총수 3분의 1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했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출할 때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로 원하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다. 다만 지난 21일 법원이 영풍·MBK 측이 신청한 의안 상정 금지 가처분을 인용하면서 이날 집중투표제 도입 의결에도 불구하고 적용은 이후 주총부터 가능해졌다. 이날은 일반투표로 안건에 대한 투표가 진행됐다.
최 회장 측이 내건 이사 수 19인 이하 제한 정관 변경 안건도 출석 의결권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으로 가결됐다. 앞서 고려아연 이사회는 최 회장 측 11명, 영풍·MBK 측 1명 등 총 12명으로 구성됐지만 이날 주총으로 전체 이사 수는 19명으로 늘었다.
이어진 이사 선임안 투표 결과 최 회장 측이 추천한 이사 후보자 7명이 모두 과반 득표를 얻어 이사회에 입성하게 됐다. 반면 영풍·MBK 측이 추천한 14명은 20∼30% 찬성 득표로 전원 이사회 입성에 실패해 이사회를 장악하려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앞서 고려아연은 주총 개회 직후 “상법 조항에 따라 영풍이 보유한 당사 주식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이로써 영풍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25.4%에 대한 의결권이 제한됐다.
이는 고려아연의 호주 손자회사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이 최 회장 및 일가족으로부터 영풍 지분 10.3%를 취득함에 따른 조치다. 최 회장은 전날 영풍 지분 일부를 SMC에 매각했다고 공시했다.
고려아연은 호주 중간 지주사 역할을 하는 선메탈홀딩스(SMH)를 통해 SMC를 100% 지배하고 있다. SMC가 영풍 지분 10.3%를 확보하면서 고려아연 지분 25.4%를 보유하고 있는 영풍에 대한 지배력을 갖게 됐다. 이번 지분 거래로 고려아연 지배구조에 순환출자 고리(고려아연→SMH→SMC→영풍→고려아연)가 생겨 상호주 의결권 제한을 적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상법상 A 회사가 자회사나 손자회사를 통해 B사 주식을 10% 이상 보유하면 B사가 가진 A사의 지분은 의결권이 없어진다.
이에 대해 영풍 대리인인 이성훈 변호사는 주총 발언을 통해 “고려아연 최대 주주로서 50년간 아무런 문제 없이 발행주식 25.4%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해왔다”며 “공시 이후 전자투표가 마감되고 주주로서 관련해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지위에서 의결권이 제한되니 강도당한 기분”이라고 불만을 제기했다. MBK 측 대리인은 “외국 회사는 상법상 회사가 아니고 영풍 지분을 취득한 SMC는 진정한 외국 회사”라며 “법정에 가서 명확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