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가운데는 청문회에서 증언을 거부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오른쪽은 박성재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증언하지 않겠다.”(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시키는 거 다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명단을 보니까 그거는 안 되겠더라.”(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22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선포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이 전 장관은 증인선서도 거부하고, 대부분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를 “고도의 통치행위”라면서 국민 억장을 무너지게 할 때와는 딴판이었다. 계엄에 반기를 들었던 홍 전 차장은 달랐다. 그의 증언에 다들 속이 뚫리지 않았을까 싶다.
인지심리학자 에밀리 카스파르가 출간한 <명령에 따랐을 뿐>을 보면, 복종은 죄책감에 관여하는 뇌의 영역을 마비시킨다고 한다. 그가 르완다·캄보디아 학살 가해자를 인터뷰하고 여러 연구를 검토한 결과, ‘나쁜 정부’의 명령을 따랐다는 주장은 가해자 대다수의 변명이었다. 반면 불합리한 명령에 저항하는 사람은 명령에 따랐을 때 발생할 피해에 책임감을 느끼며,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이 강했다.
“명령을 따랐을 뿐”이란 말은 지금도 되풀이된다. 이 전 장관이 증언을 거부한 것도 앞으로 수사·재판에서 불리할 걸 알았던 거 아닐까.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 저지를 위해 직원들을 다그친 김성훈 경호처 차장도 그 범주다. 윤석열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정작 주변에는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사람들만 둔 것 같다.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은 “역사적으로 전쟁, 집단학살, 노예제도 같은 가장 끔찍한 일들은 불복종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복종 때문에 일어났다”고 했다. 12·3 내란도 가담한 공직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이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이들을 봤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에 내심 놀랐을 것이다. 지금 국민들이 이들을 응원하고 자신들에게 등 돌린 사실에 더 놀랐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일보다 생각하지 않고 실행하는 게 더 쉽다. 그래서 악이 등장한다.”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의 이 말은 현재 대한민국에도 섬뜩한 경고를 보낸다. 국민에게 짐 되는 대통령·공직자들이 저리 저항하니, 응원봉 드는 겨울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