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지속된’ 비극](https://img.khan.co.kr/news/2025/01/23/l_2025012401000736900071711.jpg)
야만 대륙
키스 로 지음 | 노만수 옮김
글항아리 | 640쪽 | 3만8000원
폴란드 서남부의 작은 도시 즈고다. 이곳에 있던 ‘수용소’는 1400명 정도를 수용하도록 설계됐지만 5000명 넘게 구금됐다. 적절한 음식은커녕 최소한의 생존조건조차 갖춰지지 않은 이곳에 수감된 사람들은 매일 죽도록 노역했고 고문과 폭행에 시달렸다. 몇 개월 동안 수감자 중 3분의 1이 사망했다. 폴란드 내의 다른 수용소나 감옥도 이 같은 상황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시점의 비참하고 비극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는 독일이 항복한 뒤 벌어진 일이다. 수감자는 폴란드 땅에 거주하던 독일인이거나 나치 추종자 혹은 신분증을 갖고 있지 않거나 과거 나치가 속한 독일인 스포츠클럽의 회원이었다는 사소한 이유로 근거 없이 체포된 사람들이었다. 이탈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독일, 프랑스 등등 이 같은 폭력이 발생한 곳은 전후 유럽 전역을 가리지 않았다.
끔찍한 비극이던 2차 대전 종전은 비극의 끝이 아니었다. 종전은 새로운 비극과 만행의 기점이 됐다. 복수와 징벌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자행하는 짐승 노릇은 계속됐다. 대중적 역사저술가인 저자는 1945년부터 1947년까지 전후 유럽에서 발생한, 지속된 비극에 초점을 맞췄다. 그간 ‘전후’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책들은 나치즘(파시즘)과의 결별 과정, 전쟁이 남긴 부정적 유산에 대한 대처, 피해자 보상에 관한 기술이 주류를 이뤘지만 이 책은 드물게도 전쟁 직후의 폭력과 혐오, 잔학행위에 확대경을 댔다.
중대하고 격동적인, 대중적 관심의 영역에서 비켜나 있던 이 난세의 지옥도를 읽어가는 과정은 소름끼치고 고통스럽다. 야만성의 지배가 이어진 까닭은 저마다의 다른 목적과 동기를 가진 갈등이 내재해 있었기 때문이고 지배세력은 이를 이용했다. 이는 현재 세계의 모습과도 무관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