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그 자체인 트럼프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

“몸을 낮추어 온 힘을 다하고, 죽은 뒤에야 멈추겠다.” 제갈량의 출사표다. 충의를 상징하는 고사로 종종 인용된다. 그리고 부디 잊혀야 할 출사표가 여기 있다. “취임 첫날은 독재자가 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출사표다. 어찌 감히 공공연하게 독재자를 자임할 수 있을까. ‘첫날’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본질을 넌지시 고백하는 것이리라. 여하간 트럼프의 공언은 현실이 되었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의 행정명령 중 절반에 가까운 78개를 철회하는 내용을 포함해 41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면면을 살펴보면 환경, 인권, 다양성 등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의 가치를 깡그리 내팽개친다.

1호 명령은 또다시 파리기후협정을 탈퇴하는 것이다. 기후위기로 파국의 들머리에 놓인 인류의 발버둥을 단숨에 걷어찬 미국은 이란, 리비아, 예멘 등과 함께 협정에 참여하지 않는 소수 국가 중 하나가 되었다. 트럼프는 이번 탈퇴 결정의 배경으로 미국의 경제적 이익 보호와 에너지 독립을 들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화석연료 산업의 부활과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며 이를 ‘미국 우선주의’의 연장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국제사회와 미국 내 전문가들은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심각한 후퇴로 간주하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의 파리기후협정 탈퇴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도시, 주, 기업들이 지속해서 저탄소 경제를 향한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를 표명했지만, 실상 미국의 재탈퇴가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미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탄소 배출국이다.

그리고 에너지 규제 완화와 연결된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석유와 가스 개발에 대한 연방 규제를 완화하고, 연방 토지와 해양에서 화석연료 시추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또 ‘그린 뉴딜’을 종료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 지원을 축소하며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를 강조하는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행정명령도 빼놓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면 미국의 탄소 배출량은 급격히 증가할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재생 가능 에너지 산업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면서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이 지연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결국 국제사회의 환경과 외교 측면에서 막대한 손실은 불 보듯 뻔하다. 기후위기는 국경을 초월한 문제다. 제아무리 초강대국이라 해도 그 영향은 피할 수 없다.

이외에도 독재자를 자처한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거침이 없다. 연방정부와 공공기관의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프로그램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고, 보수적 기독교 의제를 중심으로 연방정부를 운영하겠다는 ‘프로젝트 2025’를 실행하기로 했다. 연방 공무원을 손쉽게 해고하고 행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Schedule F’를 도입하고 2021년 국회의사당 폭동에 연루된 트럼프 지지자 1500여명을 사면함으로써 삼권분립을 중심에 둔 민주주의 체계를 트럼프 개인을 위한 장치로 격하시켰다.

이렇게 2025년 트럼프의 귀환은 지구 위기 그 자체다. 이쯤 되면 지금 당장 백악관으로 달려가 촛불이라도 들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혼란과 난제에 더해 바다 건너 파고가 심상치 않다.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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