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12·3 내란과 1·19 폭동이 그랬다. 경찰이 국회를 봉쇄하고 군대가 국회에 난입했던 내란도 아찔했지만, 법원에서의 폭동은 끔찍했다. 폭도들은 난폭했다. 윤석열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찾겠다며 곳곳을 뒤졌고 또 망가뜨렸다. 극우 유튜버의 선동 때문이라지만 이해하기 힘들었다. 자기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내란을 일으키거나 법원에서 난동을 부리면 꽤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도 몰랐을까.
내란 이후, 일부 언론과 정치인들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자기 안위를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해쳐도 좋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윤석열이 문제의 핵심인데, 엉뚱하게 87년 체제를 들먹이며 목소리를 높인다. 개헌이 만사형통은 아니다.
제6공화국 헌법은 완벽하지 않다. 허점도, 시대에 맞지 않는 대목도 꽤 있다. 그렇지만 내란이 현행 헌법 때문이라는 진단은 지나치다. 계엄 선포가 내란으로 이어졌지만, 계엄 해제 요구로 내란을 막고 탄핵소추로 윤석열의 권한 행사를 정지시킨 것도 모두 현행 헌법 규정을 따른 것이다. 진짜 문제는 87년이 아니라, 훨씬 더 이전, 1961년으로 돌아가야 만날 수 있다.
1961년은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해다. 그는 12·3 내란과 1·19 폭동을 꼭 닮은 범죄를 저질렀다. 박정희는 ‘형법’의 내란죄, ‘군형법’의 반란죄에 해당하는 중대범죄를 저질렀지만, 죽을 때까지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대통령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심지어 역사적 심판까지도 피해가고 있다. 쿠데타는 자신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은 아무래도 좋다는 위험한 망상을 현실화시켰다.
국가지도자가 국민의 선택이 아니라, 군인의 총칼에서 나올 수 있다는 반국가적 발상이 현실화하면서 대한민국은 모든 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치부터 허물어졌다. 힘이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 국가폭력도 흔해졌다. 시장의 지배,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해야 할 국가는 제 역할을 포기하고 힘만 좇는 도구가 되었다. 한국은 돈만 있으면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
대통령은 헌법 수호라는 직무를 수행하며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자리가 아니라, 권능을 휘두르고 권력을 과시하는 자리가 되었다. 헌법은 공무원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명토 박고 있지만, 실제로 봉사를 위해 공무원이 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선출직 공직자는 특히 그렇다.
1961년 체제는 1968년에 더 고약해졌다. 김신조 일당의 남침 등 안보 이슈가 유독 많았는데, 박정희는 정권을 강화하고 국민을 통제할 좋은 기회라 여겼다. 간첩 색출을 명분으로 주민등록제도를 만들었다. 시작은 1962년이었지만, 주민등록증, 주민등록번호, 지문날인을 포함하는 통제시스템은 1968년에 본격화되었다. 모든 국민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는 헌법 조문은 제3공화국과 제6공화국이 같았지만, 박정희 시대의 국민은 한낱 통제 대상이었을 뿐이다.
모든 국민에게 생년월일, 성별, 출신지역과 가족을 의미하는 일련번호를 매겼고, 주민등록증은 언제나 갖고 다녀야 했다. 법률 근거도 없이 열 손가락 지문날인도 강제했다. 예비군도 1961년 처음 만들었다.
박정희는 이승만이 그랬듯 왕처럼 굴었다. 이들 독재자들이 뿌려놓은 씨앗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싹트고 때론 열매 맺기도 했다. 핵심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은 아무래도 좋다는 발상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내란은 윤석열의 망상에서 시작했지만,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내란세력을 하나씩 찾아내 단호하게 처벌하는 것부터 내란 극복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내란에 동조하거나 내란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세력도 청산해야 한다. 앞으로 있을 여러 선거가 그래서 중요하다. 형사처벌이나 선거만큼 중요한 일은 내란이 가능했던 풍토를 바꾸는 거다. 그래야 제2, 제3의 내란과 폭동을 막을 수 있다. 내란 사태의 종식은 내란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체제, 곧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으로 완성된다.
체제를 바꾸는 일, 국민을 단지 통제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주인으로 제대로 대접하기 위한 일, 곧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과 인권교육을 강화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문날인 제도를 폐지하는 등 제도적 개혁도 필요하다. 해야 할 일이 많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