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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이 있었다

“밥은 심이 없고도 고슬고슬하게 지어서 촛물(쌀 5컵에 반 컵 정도 너무 시지 않고 달게 설탕 타고 소금간을 한다)을 더운밥에 뿌리면서 부채질을 하여 식히면 밥에 윤도 나고 먼 길을 가서도 밥이 식지 않고 맛이 있다. 김말이는 햄이나 소시지 또는 고기 볶은 것과 시금치, 표고, 박오가리, 생선보푸라기 등을 단단하게 너무 굵지 않게 말아야 한다.”

동아일보 1970년 10월2일자에 보이는 김밥의 모습이다. 위의 글을 쓴 궁중음식 연구자, 당시의 한양대 교수 황혜성(黃慧性·1920~2006)이 글을 쓰며 선택한 말은 김밥이 아니라 ‘김말이’이다.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김밥은 ‘김말이초밥’, ‘김말이’, ‘김초밥’ 등으로도 불렸다. 그때의 김밥이란 워낙 길 떠나 먹을 것을 전제로 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상하지 않도록 식초로 밑간을 하게 마련이었다. 참기름 밑간은 나중의 이야기이다. 더구나 김밥이란 조선 사람들이 익히 먹어왔던 김쌈과 일식 김초밥인 ‘노리마키(海苔卷き)’가 만나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오늘날에 이른 사물이다. 위에 보이는 ‘박오가리’의 실제 내용은 달콤짭조름한 일식 조림인 ‘간표(干瓢)’이다. ‘생선보푸라기’는? 여기서 보푸라기는 생선 또는 고기의 살을 으깨 만드는 일식 ‘오보로(朧)’ 또는 소보로(ソボロ)이다. 흰살생선의 살을 두드려 보풀려 긁고 찢고 찧어 만드는 한식 반찬하고는 상관없는 음식이다. 간표나 오보로 모두 대표적인 노리마키의 부재료이다.

한편 수산학자 정문기(鄭文基·1898~1995)는 경향신문 1955년 5월28일자의 한 꼭지에서 “우리는 벌써 원족(遠足)이나 운동회나 여행 시에도 김밥을 먹는 습관이 들었다”고 했지만 해방 전부터 먹어왔으되 그 세부의 변화가 상당한 음식이 김밥이다. 예컨대 햄과 소시지는? 1963년 평화상사라는 이름으로 경남 진주에서 시작한 (주)진주햄의 육가공 제품은 1960년대 말 이후 김밥의 모습을 결정적으로 변화시켰다. 김밥은 또한 김밥용으로 재단한 김 한 장의 너비에 딱 맞는, 전에 없던 ‘김밥용 시금치’를 낳았다.

이러나저러나 김밥은 밥 한술이 아쉬운 누구에게나 고마운 음식이다. 지난 동짓달에도 그랬다.

2024년 12월21일 오후와 밤부터 다음날까지 무박2일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 조직한 트랙터와 화물차 시위는 서울 동작구·서초구와 경기 과천시 사이에 자리한 고개 남태령에서 차벽에 가로막혔다. 경찰은 내란수괴 체포를 촉구하고 농정 파행의 책임을 묻는 사람들을 고갯길에 가두었다. 경찰은 농민이 조직한 시위에 대해서는 일관성 있게 신속하고 약삭빠르고 악질적이었다. 지난해 12월21일은 동지였다. 사람들은 차벽에 갇힌 채 동짓날 추위에 덜덜 떨었다. 편의점 불빛마저 고갯길에서는 너무 멀리 보였다. 그래도 견뎠다. 연대 덕분이었다. 나눔 덕분이었다. 그 자리에도 여지없이 김밥이 등장했다. 시민이 죽·커피·샌드위치·햄버거·피자 등 먹을거리를 들고 달려온 가운데 김밥은 길 위에서, 차벽 앞에서, 쌀알의 연대와 쌀밥의 나눔을 펼쳐 보였다.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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